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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호근칼럼

장군별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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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 4월 9일 밤, 유권자들은 추적추적 내리던 봄비 속에서 장군들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를 여러 장 받았다. 예전 같으면 지역전투에서 승리한 장수들이 사령부에 장계를 띄워 승전을 알리고 향후 작전을 요청했을 것이었지만, 장렬히 전사한 장수들의 명단만 올라왔고 그것을 접한 사령부는 당황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그런 점에서는 동일했다. 장수들을 전장에 묻으면서 처량한 별사(別辭)를 불러야 하는 한국의 정당정치는 전혀 낯선 지대로 진입하고 있다. 지도부를 꾸려온 장수들이 사라져 중심이 붕괴했다는 정당사 초유의 현상, 따라서 당권을 장악하기 위한 치열한 내전이 곧 시작되리라는 예감이 그것이다.

장수들의 죽음을 유권자들은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 그것은 공천 과정에서 이미 예고된 사망선고였다. 당원들의 의견수렴을 생략한 채 아웃사이더가 정치인의 개별 운명을 재단한 것도 이상했고, 노련한 원로급 인사들을 대책 없이 솎아낸 공천 방식은 더욱 낯설고 의아했다. 세대교체 같은 그럴듯한 명분이나 시민사회와의 교감이 있었다면 모를까, 몇몇 장수들은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아예 전역통지서를 받았다. 공천위원회의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상대 당이 장군을 부르면 멍군으로 치받았고, 민병대장을 내세우면 의병대장으로 응수했다. 17개 정당 중 7개 정당이 대체로 그런 전술을 구사했다. 노련한 장수들은 서로 일합을 겨뤄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는데, 이미 힘이 빠진 그들을 상대로 이름 없는 신예들까지 선전을 했으니 18대 총선은 ‘장수 죽이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당은 사령관 격인 손학규와 정동영을 잃었고, 장군 격인 김근태·유인태·한화갑·한명숙·신기남을 잃었다. 정동영은 요격 대상이었다 치더라도, 당 대표까지 특공대로 나설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한나라당이 입은 치명상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다. 6인 원로회의가 이미 공천 과정에서 해체된 터에 정권탈환의 공신인 이재오·이방호·정종복·박형준이 민심 역풍을 맞아 대망을 접었다. ‘박근혜의 저주’가 내렸다는 풍문도 들리는데, 어쨌든 진격대장 박근혜는 사파리 전투복을 벗지 않은 채 덩치가 커진 당의 텅 빈 중심을 주시하고 있다. 중심이 비기는 진보신당도 마찬가지여서, 무명용사에 속절없이 무너진 심상정과, 화려한 성공신화의 얼짱 신인에게 당한 노회찬의 패전 소식은 짭짤한 정치를 기대했던 유권자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탄돌이 부대’ 돌격대장들도 야전에 묻혔다. 맏형인 장영달·이상수와 장수급인 최재천·정봉주·임종석·우상호 등이 전사했고, 108명에 달하던 386 세력이 겨우 35명으로 줄었다. 탄돌이 부대의 집단 몰락과 이들의 군왕 격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관광 이벤트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것 사이에는 미묘한 비례관계가 성립되는 듯도 하다.

격전의 화염이 가라앉자 유권자들은 자의(自意)와는 관계없이 스스로 휘말렸던 게 이른바 ‘삼국지 정치’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후한(後漢)에 반기를 든 위·촉·오의 군주와 참모·장군들이 피 마르게 싸우는 정쟁 파노라마가 삼국지의 요체라 한다면, 한국의 정당정치는 세(勢)불리기·영토 확장·적장 제거를 위한 계략 교본인 삼국지를 재현하고 있었던 셈이다. 21세기의 정치는 매혹, 소프트하고 깊은 울림을 주는 매혹이기를 원한다. 누가 삼국지를 한국의 필독도서로 꼽았는지 모르지만, 성경보다 삼국지를 머릿속에 넣고 성장한 세대들이 펼치는 검투사 정치를 이제 끝낼 때도 되었다. 관우와 장비의 배포, 동탁과 여포의 괴력, 제갈량의 꾀가 휩쓰는 거친 정치를 앞으로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유권자들은 상대를 압살하는 ‘죽임의 정치’가 아니라, 생활세계의 깊은 곳에 눌려 있던, 그래서 누가 감히 공론화하지 못했던 절박한 쟁점들에 생명을 불어넣는 ‘살림의 정치’를 고대한다. 금기영역의 활화산에서 열광의 춤을 추는 혼혈 후보 오바마의 자유로운 영혼이 미국인의 눈물을 자아내듯 말이다.

사정이 어찌 됐든 우리는 장엄한 마음으로 장군들의 부고를 접수한다. 싫든 좋든, 이들이 한국 정치에 남겼던 발자취를 기리면서 ‘장군별곡’이라도 불러야 한다. 어떤 심정이라고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그 별사(別辭)가 130여 명에 달하는 초선 신예들의 ‘미래를 위한 합창’과 어우러져 괜찮은 코러스라도 만들어낸다면, 텅 빈 중심을 장악하기 위한 당권투쟁이 시작돼도 별로 걱정하지는 않겠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