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당권 - 소장파 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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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7일 민주당 기자실에선 두번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내용은 달랐지만 공통된 키워드는 '정체성'이었다.

오전 10시, 수도권에서 출마하는 30~40대 후보 14명이 무대에 섰다. 이들은 민주당이 탄핵 정국을 주도하는 바람에 전통적 지지층인 진보.개혁세력의 이반을 가져왔다고 주장하며 비상대책기구 구성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탄핵 과정에서 중립을 지킨 분들이 비대위를 이끌어야 한다""조순형 대표는 다른 역할이 있다"고 말해 사실상 趙대표 등 당권파의 2선 퇴진을 주문했다.

오전 11시50분, 두번째 회견의 주인공은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입당식을 겸한 회견에서 金전수석도 '정체성'을 거론했다. 그는 "분당사태 이후 정체성에 혼돈도 빚었지만 탄핵 정국을 지나면서 어느 정도 회복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趙대표 등 당권파는 재벌개혁론자로 알려진 金전수석의 입당으로 흔들리는 지지층을 결속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정책정당.경제정당의 이미지를 잘 다듬으면 거리를 둬왔던 보수세력도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초대 대법원장인 김병로 선생의 손자로, 탄핵 심판으로 주목받고 있는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이 사촌 매형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金전수석에게 비례대표 상위 순번(2번)을 약속하고 선대위의 중추적 역할을 맡길 것이라고 한다.

탄핵 역풍으로 호된 시련을 겪고 있는 민주당엔 이처럼 상반된 두 기류가 충돌하고 있다. 탄핵을 밀어붙여 반노(反노무현)세력의 결집을 통해 세를 만회하자는 당권파와 지도부 쇄신으로 떨어져 나간 지지층을 다시 불러모아야 한다는 소장파가 갈등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지역적으로는 호남을 기반으로, 진보적 성향을 띤 세력의 지지를 받아왔다. 그래서 "진보적인 전통적 지지층이 빠져나가면 결국 '호남당'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란 우려가 크다. 이런 주장은 "반노전선을 강화하기 위해선 보수층을 흡수해야 하고 그러려면 중도우파 쪽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해야 한다"는 당권파와 부딪치고 있다. 당내에선 내분사태가 극심해지면 제2의 분당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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