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뒤엔 반드시 반대급부-푼돈주고 巨金 챙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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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돈 나온 곳에서 명령 나온다』는 서양속담이 있다.돈과 청탁의 함수관계를 표현한 말이다.
논란이 한창인 정치비자금도 마찬가지다.
미국 대통령 선거처럼 유권자들이 지지 후보에게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돈을 모아주는 풍토가 아니기 때문에 정치자금이란 겉만 번지르르한 뇌물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그러나 대형 비자금 사건은 전모가 드러난 적이 거의 없다.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자금과 무관한 정치인이 없고,검찰도 정치자금은 수사하지 않는다는 게 불문율이었기 때문이다.
6共 당시의 비자금 사건들은▲정치자금과 뇌물은 성격구분이 모호하고▲금품 제공에는 반드시 반대급부가 따르며▲수사는 언제나 더 큰 의혹만 남긴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91년 수서비리 사건에서 한보그룹은 여야 국회의원.청와대비서관.건설부 고위관리등에게 10억원대의 금품을 뿌렸다.그러나 한보그룹이 수서지역에 아파트가 세워질 경우 얻게될 개발차익은 약3천억원이었다.푼돈 뿌리고 목돈 챙기는 격이다.
항간에는 한보가 대통령과 여야 최고위 수뇌부에도 정치자금 명목으로 엄청난 돈을 뿌렸다는 소문이 무성했다.수사과정에서 한보의 비자금 계좌가 발견됐지만 검찰은 담당 여직원이 잠적했다는 이유로 수사를 중단했다.
검찰의 사법처리등으로 무려 16개의 별(장성)이 떨어진 율곡비리 사건도 진행과정을 보면 똑같은 경로를 거친다.
무기상들은 74년부터 25조원이 투자된 군 전력증강사업(율곡사업)에서 무기를 팔아먹기 위해 군수뇌부와 청와대를 상대로 치열한 로비를 펼쳤다.이종구(李鍾九)前국방장관등 전직 장관과 군장성들은 10억원대를 받아 챙겼지만 그 결과는 성 능이 떨어지는 무기를 비싸게 들여오는,한마디로 국방을 팔아 사복(私腹)을채운 셈이었다.
이 때도 마찬가지로 『대통령과 직접관련이 있다』는 말이 나돌았지만 사건의 연결고리였던 청와대 前외교안보수석 김종휘(金宗輝)씨는 미국에서 영영 귀국하지 않았고,검찰수사는 의혹만 남긴채끝났다. 슬롯머신 사건에서 정덕진(鄭德珍).덕일(德一)형제는 박철언(朴哲彦)의원을 비롯한 정치인.검찰.경찰 고위간부들에게 뇌물을 상납했고,그 대가로 불법적인 슬롯머신 영업을 비호받는 반대급부를 얻었다.수사진행 과정에서 슬롯머신뿐 아니라 카 지노에서도 엄청난 비자금 살포가 이뤄졌다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이 역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과거 정권아래서 정치자금은 영원히 맞물려 돌아가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까지 파들어가면 모두가 상처를 입게 되는「아킬레스건」이었다.그 부패의 띠는 어디선가 잘라져야만 하고 그 책임이 이제 현 정권에 남겨져 있다.
〈金鍾赫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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