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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연의인카문명] TV서 본 ‘한국판 집시 가족’ … 아이들 안전은 어디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15면

얼마 전 한 지상파 TV에서 중고 소형 버스를 집으로 개조해 여행을 떠나는 어느 가족의 다큐멘터리가 방송됐습니다. 고급 트레일러를 타고 떠나는 낭만적인 여행과 달리 살던 집을 정리하고 떠나는 ‘한국판 집시’ 이야기였습니다. 시청자들 사이에 많은 논란이 있다고 합니다. 주인공이 선택한 ‘자유’에 대한 찬사와 그 선택이 아이들에게 미칠 악영향에 대한 ‘우려’로 양분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다른 측면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국도를 시원하게 달리는 주인공의 모습에 오히려 손에 땀을 쥐었습니다. 주인공의 어깨를 가르는 안전벨트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운행 중 조수석에서 아이들은 너무나(?) 자유롭게 놉니다. 제작진도 운행 중 안전문제를 제기하는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주인공의 여행에 무한한 부러움과 찬사를 보냅니다. 하지만 ‘안전’ 없는 자유가 고통과 불행을 부를까 우려됩니다. 우선 주인공의 차, 아니 집 안에 있는 좌석은 운전석과 조수석뿐입니다. 주인공이 운전석, 아내가 막내를 품에 안고 조수석에서 안전벨트를 한다고 해도 남은 두 아이의 안전은 어디서 확보해야 하나요. 자동차는 움직이는 것이어서 충돌할 가능성을 항상 지니고 있습니다. 만일 사고가 났을 때 좌석이 아닌 곳에 앉아 있는 아이들의 안전은 어떻게 될까요. 물론 뒤편에 만들어진 넓은 ‘침실’이 있다고 하겠지만 여기에서도 아이들은 눕거나, 양반다리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 관해서도 문제를 제기합니다. 지난해 여름 저는 뒷자리가 펼쳐지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몰고 장거리 여행을 떠났습니다. 동승한 사람들은 캠핑카 분위기를 내자며 군용 매트리스와 담요까지 구해왔고, 출발 때부터 자동차 바닥에 눕거나 양반다리로 앉는 기쁨을 맛보며 들떠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시간이 채 못 돼 사람은 어지럼증과 허리 통증을 호소했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움직이는 차 안에서 의지할 곳 없이 앉아 있는 우리 몸은 스스로 중심을 잡으려 합니다. 일정 시간 이 상태가 지속되면 당연히 피로하게 되고 멀미도 생깁니다. 또 자동차는 달리면서 위아래 그리고 좌우로 계속 흔들립니다. 달리는 차에 누워 있다는 것은 자동차 서스펜션의 움직임과 충격을 우리 머리로 그대로 받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자동차 시트가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 비싸다는 ‘마이바흐’ 뒷자리도 완전하게 일자로 눕혀지진 않습니다.

현대문명으로부터의 탈출! 온 가족이 함께하는 여행! 찬사와 우려 속에 첫발을 내딛는 주인공을 직접 만날 수 없어 지면을 통해 부탁드립니다. 아이들을 위한 안전벨트와 시트를 꼭 만드십시오.

그리고 방송을 보니 버스의 변속기가 수동이더군요. 시동을 끈 버스에서 아이들은 운전대를 잡고 놀이를 하기가 십상입니다. 사이드브레이크를 단단히 채우고, 주차 후 버팀목 받치는 것도 잊지 말기 바랍니다.

남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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