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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일본속의 한국문화유적을 찾아서" 김달수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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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광복절을 맞아 舊조선총독부건물 해체등 일제잔재 청산 작업이 본격화되는 것과 때맞춰 우리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여줄만한 책이번역 출간됐다.재일(在日)작가이자 사학자인 김달수씨의 『일본 속의 한국문화유적을 찾아서』(배석주 옮김.대원사 刊)가 그것.
저자 김씨는 韓日관계 고대사의 수수께끼를 풀어줄 일본 나라(奈良)縣과 교토(京都).오사카(大阪)일대에 묻힌 고대 한국인의흔적을 저널리스트적 시각으로 샅샅이 뒤지고 있다.저자는 그러나『문화는 늘 흐르게 마련이어서 한때의 문화적 우수성만으로 우리가 일본민족보다 우수하다고 단정해서는 안된다』고 독자들에게 주문하고 있다.
일본고대국가의 발상지인 야마토(大和.현재의 나라현)는 고대 유물.유적의 보고.저자는 이 지역 곳곳에 흩어져있는 신사와 씨사(氏寺),고분의 주인공을 추적해 야마토의 다케치(高市)郡 아스카(明日香)村일대에 신라.백제.고구려.가야계 문 화가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일본서기』의 텐무(天武)천황조에 보면 히노쿠라사라는 절 이름이 나오는데 이것은 백제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지은 씨사(氏寺)라고 한다.또 아스카 산악지방인 하타(波多)鄕에 살았던 신라.가야계 도래인 하타(秦)씨족은 아스카강 최상류에 각각 하타신사와 카야나루미노미코토(加夜奈留美命)신사를 남겼다는 설명이다.
나라현 야마토산(大和三)山의 고분에서 한국의 고대 가야지역에서만 출토되는 기마인물형토기.소못등이 발굴된 것도 이 설을 뒷받침하는 것이다.아스카지역에서 불교를 가장 먼저 수용했던 소가(蘇我)씨족이 남긴 아스카사(飛鳥寺)와 호코사(法興寺)등 수많은유적의 건축양식등을 분석하면 고구려인과 백제인이 일본에서 일체가 되어 활동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고대 한반도의 모든 국가들이 일본에 진출했음을 중시하고 『이는 그들이 단순한 선진문명의 중개자가 아니라 신천지를 찾아나선 개척자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91년 나라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아스카자료관에서 열렸던 『아스카의 원류(源流)전』도 도래인의 범위가 고대한반도 전역에 걸쳐 있었음을 웅변으로 보여준 전시회였다.당시 전시회의 기획의도는 아스카의 문화적 뿌리가 한반도임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는데 자료관의 학예실장은 『앞으로는 어떻게 해서든 신라유물을 많이 전시하려고 한다』고 밝힌바 있다.당시 전시실 입구에는 아예 한국의 석인(石人)모조상이 자리잡았었다.
『아스카의 원류전』에 앞서 열린 『만요오(萬葉)의 의식주』라는 전시회도 상당히 흥미로운 것이었다.그때 나온 「재현,만요오의 식사」라는 엽서를 보면 한쪽 무릎을 다소곳이 꿇고 앉은 두여인의 의복이 한국여인의 그것과 너무도 흡사하다 .전시회 당시발표된 아스카자료관 이노쿠마 가네가쓰(猪熊兼勝)학예실장의 논문에는 5세기께 고구려 덕흥리고분 인물상에 나타난 한국인 남녀들의 의상이 일본 의상의 기초였다는 내용까지 들어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단순히 일본 문화의 뿌리가 한반도라는 사실에 우월감을 느낄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 문화를 완전히 자기것으로 소화,발전시켰다는 사실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같다. 鄭命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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