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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타·삼성그룹·차이나’ 펀드에 군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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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호 32면

재테크도 분자 조리법
요즘 식도락가 사이에선 화학적 분석법을 곁들인 분자(分子) 요리가 화제다. 과학의 힘을 빌려 입맛을 돋우는 기법이다. ‘재테크 1번지’인 강남권의 돈 굴리기도 비슷하다. 첨단 금융기법으로 양념을 친 동부자산운용의 ‘델타’ 시리즈 펀드가 많은 러브콜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자들의 펀드 식탁 엿보기

이는 중앙SUNDAY가 은행과 증권사에서 실적이 좋은 강남의 PB센터를 한 곳씩 추천받아 주가 반등을 전후해 3월부터 가장 많이 팔린 ‘펀드 5걸’의 순위를 조사한 결과다.<그래픽 참조> 조사엔 신한·우리·하나·국민은행과 미래에셋·한국투자·푸르덴셜투자·동양종합금융·우리투자·삼성증권 10개사가 참여했다. 원래 구체적인 판매액을 비교해야 하지만 경쟁사에 정보 노출을 꺼리는 관행 때문에 순위에 포함된 횟수로 큰 흐름을 봤다.

델타 펀드는 4개사의 순위 리스트에 들어 공동 2위를 했는데 선물·옵션 거래의 위험회피 기법인 ‘델타 헤징’이라는 금융공학을 활용해 부자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사로잡았다. 하나은행 선릉역 골드클럽 지점의 강홍규 PB부장은 “코스피 200 지수가 향후 1년간 40% 이상 하락하지 않으면 원금을 최대한 보전할 수 있고, 주가가 오르면 최고 20%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한국증권 압구정 PB센터에선 이 상품의 판매액이 펀드 5걸 중에서 34%를 차지했다.

박스권 장세가 불안하지만 향후 주가 흐름이 좋을 것으로 예상될 때 어울리는 상품이다.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의 기상예보를 보면 ‘상반기 횡보→하반기 회복’이 많은데 부자들이 이런 흐름에 적절히 올라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동부운용의 박희봉 상품전략팀장은 “채권에 많이 투자하는 주가연계증권(ELS)과 달리 주식·선물에 주로 투자해 세금을 줄일 수 있어 PB 고객에게 호응이 높다”고 말했다.

골집이 맛있다
그렇다고 부자들이 단골집 발길을 끊은 건 아니다. 판매 순위에 이름이 많이 등장한 1위와 3위 펀드는 미래에셋의 디스커버리와 인디펜던스였다. 각각 7개 사와 3개 사의 ‘펀드 5걸’ 리스트에 들었다. 특히 “상위 5개 펀드 중에서 디스커버리가 판매 1위를 차지했다”고 밝힌 금융사만 5개에 달했다.

신한은행 방배 PB센터의 송재원 팀장은 “국내의 간판급 대형 성장주 펀드로 위험조정 성과가 좋아 부자 고객들이 꾸준히 찾는다”고 말했다. 2001년 7월 출시된 디스커버리 1호는 누적 수익률이 760%에 이른다. 시장의 굴곡을 겪으며 달성한 성과다.
과거의 복기(復棋)는 미래에 대한 준비와 맥이 닿아 있다. 삼성증권 Fn Honors 삼성타운의 사재훈 지점장은 “시장 반등이 멀지 않았다는 판단으로 미래에셋 주력 펀드에 투자하는 고객이 많다”고 말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지난해 달콤한 맛으로 인기를 끌었던 펀드들이 5위 안에 포함돼 눈에 띈다. 한국운용의 삼성그룹주 펀드는 동부운용의 델타 펀드와 함께 공동 2위에 올랐다. 우리은행 투체어스 서초 센터의 김인응 팀장은 “삼성 관련주들의 발목을 잡은 특검 수사 악재가 해결되고, 원화 약세로 수익성이 호조되며, 정보기술(IT) 경기가 회복하면 펀드 수익률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고객이 많다”고 했다.

물론 부자들이 다른 투자자들보다 더 많은 돈을 적극적으로 펀드에 넣고 있다고 속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중앙SUNDAY가 입수한 A금융회사의 구체적인 판매액을 보면 분위기는 알 수 있다. 이 회사 PB센터의 경우 5개의 상품 중에서 일반 고객들도 가입할 수 있는 4개 펀드는 3월부터 총 14억원어치가 팔렸다. 100여 개 지점의 평균 판매액보다 세 배가 많다. 펀드 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일단 펀드 전체로 들어오는 자금도 1월에 증가세를 보이다 한풀 꺾인 뒤 최근 주가 상승과 함께 다시 좋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자장면의 귀환
중앙SUNDAY는 올 초 서울과 수도권의 부자 1만1000여 명을 대상으로 투심(投心)을 짚었다. 거액 자산가들이 가장 침을 삼키는 상품은 EMEA(동유럽·중동·아프리카) 펀드였다. 풀 죽은 중국과 인도 증시를 대신할 싱싱한 재료로 생각했다.

그러나 3월 이후 부자들이 장바구니에 가장 많이 담은 상품은 의외로 ‘중국 펀드’였다. 9개사의 리스트에 ‘차이나’란 이름이 등장했다. 동양종합금융증권 골드센터 강남점의 유진경 차장은 “중국 증시의 바닥이 가까웠다는 판단에 따라 저가 매수를 노리는 고객이 많다”고 말했다. 국내 중국 펀드들이 투자하는 홍콩 H지수는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다 3월 하순부터 오름세로 돌아섰다.

홍콩과 중국 증시는 아직 불확실한 변수가 많다. 하지만 부자들 역시 지난해 자장면처럼 달았던 수익률 맛을 잊지 못하고 일단 장기적으론 낙관적 시각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모습은 일반 투자자들도 비슷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불똥이 잦아들자 중국 펀드를 중심으로 해외 펀드로 자금이 들어오고 있다.

해외펀드 2위는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에 나눠 투자하는 브릭스 펀드였다. 중국과 비슷한 맥락으로 판매액 5걸에 들었다. 그러나 지난해 가을 출시 한 달 만에 4조원을 끌어 모은 미래에셋의 인사이트 펀드는 3개 사의 리스트에만 턱걸이로 이름을 올렸다. 당초 기대만큼 수익률이 좋지 않은 데다 펀드 수수료가 연 3%대로 너무 높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국내 펀드와 달리 부자들이 실제로 가입한 상품과 PB들이 추천하는 펀드는 조금씩 차이를 보였다. 이번 조사에서는 각 금융사의 ‘추천 펀드’도 살펴봤는데 PB들은 브라질·러시아 펀드나 월가의 금융주 펀드 등을 권했지만 해당 회사에서 많이 팔린 펀드엔 끼지 못했다. 대치동 타워팰리스 인근의 우리투자증권 골드넛멤버스 WMC 관계자는 “부자들은 이미 다양한 해외펀드로 분산 체제를 갖춘 데다 눈이 높아지고 시장 공부도 많이 해 스스로 상품을 택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다만 거액 자산가들이 입맛 다시는 상품이라고 무조건 영양가가 있는 건 아니다. 일본 펀드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초 PB센터를 포함해 날개 돋친 듯 팔렸지만 투자자들은 배탈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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