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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가 아직 테러리스트? 명단에 남아 미국 여행 제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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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흑인 인권운동가 넬슨 만델라(사진·89)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현재 미국 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 그의 이름이 미 행정부의 테러리스트 감시 명단과 여행 제한 대상자 명단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10일 상원 청문회에서 “내가 전 주미 남아공 대사뿐만 아니라 위대한 지도자인 넬슨 만델라에 대해서도 여행 허가를 내줘야 한다는 건 곤혹스러운 문제”라며 “이제 만델라와 그가 이끌었던 아프리카민족회의(ANC·남아공 여당)를 감시 명단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바버라 마세켈라(여) 전 미국 주재 남아공 대사는 미국에 사는 조카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에 입국하려 했으나 비자를 받지 못해 애를 태웠다. 마세켈라는 2003~2006년 미국에서 남아공 대사로 활동했다. 그런 그가 대사직을 그만두자 국무부는 그가 ANC 관계자라는 이유로 비자를 내주지 않았다. 마세켈라는 결국 세상을 떠난 조카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하워드 버먼 하원 외교위원장은 최근 만델라와 ANC 관계자를 미국의 감시 및 여행 제한 대상 명단에서 삭제하는 내용의 법안을 냈다. 그는 기자들에게 “만델라가 미국 비자를 받을 자격이 없으며, 미국에 들어오기 위해선 특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수주 전 알았다”며 “이런 규제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건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가 낸 법안은 “ANC가 이끄는 현 남아공 정부는 테러리즘과 싸우고 있는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라며 “국무장관과 법무장관·국토안보부 장관은 현실에 맞는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워드 위원장은 “최대한 빨리 법안을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안에 서명한 민주당 소속 바버라 리 연방 하원의원도 “그런 명단에 만델라의 이름이 들어 있다는 걸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미국은 냉전 시절이던 1980년대 초 남아공 백인 정권의 아파르트헤이트(흑인 인종 격리 및 차별정책)에 항거했던 ANC와 만델라를 테러리스트 명단에 포함시켰다. 남아공 백인 정권은 60년 ANC를 반체제 집단으로 지정하고 정치활동을 못하도록 했다. 미국은 이를 근거로 ANC가 소련의 지원을 받아 남아공 정권 전복 및 테러 활동을 했다며 행정부의 각종 보고서에 ANC를 ‘테러집단’이라고 명기했다.

그러나 ANC가 90년 정치적 결사체로 인정받고, 만델라가 94년 5월 대통령에 취임했음에도 미국의 블랙 리스트는 바뀌지 않았다. 뉴욕 타임스는 “미 행정부가 ANC를 테러 감시 명단에서 뺄 경우 비슷한 역사를 가진 외국의 다른 단체도 같은 대우를 해 달라고 요구할까봐 블랙 리스트를 조정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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