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나라당은 대화와 타협의 정치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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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8대 총선은 집권 한나라당에 신뢰와 경고의 메시지를 동시에 보냈다. 과반의 달성과 수도권 압승은 신뢰라 볼 수 있다. 대통령 선거에서 보여준 지지에 이어 과반을 준 것은 정권을 맡겨준 책임을 다하라는 신뢰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 자유선진당의 돌풍은 경고음이다. 일을 하도록 신뢰는 보내되 독주와 독선은 하지 말라는 경고다. 한나라당은 이러한 상반된 메시지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 유권자들은 박근혜와 이회창이란 두 인물을 통해 한나라당에 경고했다. 엄밀히 말해 집권을 주도할 주류는 과반을 보장받은 게 아니다. 당 외뿐 아니라 당 내에도 박근혜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박근혜와 협조해 국정을 운영하라는 지침을 준 것이다.

국민은 한나라당의 주류 한쪽만으로는 미덥지 못했다. 그들의 행태를 보아 왔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공천에서 막강한 힘을 행사하던 두 실세가 국민의 힘으로 탈락됐다. 권력의 관점에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지금 식의 한나라당을 내버려 두었다가는 독주·독선이 판칠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타협의 정신과 신뢰라는 가치를 버렸기 때문이다. 자유선진당이 대전·충남에서 약진한 것은 주로 지역감정에 힘입은 바 크지만 ‘박근혜 바람’은 다르다. 주류의 책임이다. 지난해 8월 박 전 대표는 경선 패배를 깨끗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회창 전 총재가 출마해 보수가 분열되었을 때 “그의 출마는 정도(正道)가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이명박 당시 후보는 대선 때 정권 창출 이후에도 박 전 대표를 소중한 국정의 동반자로 삼겠다고 천명했다. 지난 1월엔 박 전 대표를 만나 ‘공정한 공천’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박 전 대표는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말을 남기고 대구에서 17일간 칩거한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어떻게 끝났는가는 선거 결과가 보여준다.

한국의 유권자는 힘을 가진 이가 의리와 약속을 깨고 힘없는 이를 핍박하는 것을 방관하지 않는다. 1996년 15대 총선 전 집권주류 세력인 상도동계는 김영삼 대통령의 집권을 도왔던 김종필(JP) 계열을 구태 정치로 몰아 사실상 축출했다. JP는 자민련을 만들었고 충청·영남 등지에서 대거 50석을 거뒀다. 민심이 12년 전에 보여준 원칙의 정치를 지금의 집권 세력이 망각했던 것이다.

한나라당이 나아갈 길은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정치의 기본 원칙은 약속 이행, 타협과 화합이다. 한나라당은 이제 권력을 독식하겠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박근혜뿐 아니라 이회창, 통합민주당과도 협조와 대화로 국정을 이끌어야 한다. 그것이 유권자들의 요구다. 친박연대와 무소속의 복당 문제도 그런 기조에서 검토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박 전 대표도 이제는 대승적 차원에서 정국 안정에 기여할 때다. 10년 진보 정권의 적폐를 해소하려면 할 일이 산더미 같다. 당이 총선의 갈등에만 빠져 있어선 안 된다. 무엇이 국가와 효율적인 정국 운영을 위하는 길인지 그가 숙고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