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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총선긴급좌담] “20년 정치 담론 지배해온 민주화 시대 마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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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9일 오후 본사 편집국 회의실에서 열린 총선 특별좌담회에서 중앙대 장훈<左>, 연세대 김호기<中>, 숭실대 강원택 교수가 18대 총선 결과와 향후 정국 전망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사진=김성룡 기자]

사회=김진국 정치·국제 에디터

18대 총선 개표가 진행된 9일 밤. 중앙일보 편집국에 정치·사회학 전공 교수 세 명이 모였다. 강원택 숭실대 정치외교학,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 장훈 중앙대 정치외교학 교수다. ‘한나라당의 턱걸이 과반과 역대 최저 투표율’로 요약되는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세 교수는 “1987년 이후 정치 담론을 지배해 온 민주화 시대의 마감을 알린 선거”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46%라는 역대 최저 투표율에 대해선 “정당 민주화의 후퇴”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특별좌담은 중앙일보 김진국 정치·국제담당 에디터의 사회로 진행됐다.

▶사회=선거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김호기 연세대 교수=이번 총선은 1987년 이래 정치 담론을 지배했던 민주화 시대의 마감을 알리는 선거였다. 그러나 새롭게 부상한 보수적 실용주의에 대한 견제 심리도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인수위와 정부 출범 이후 국정 운영을 돌아보면 대운하와 영어몰입교육, 인사 정책에 대한 불만이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장훈 중앙대 교수=유권자들은 대통령과 국회가 서로 견제하고 그것을 통해서 새로운 정치적 방향을 모색해 가도록 하는 선택을 했다. 지난번 대선에서 압도적 다수로 당선됐지만 정부의 초반 국정 운영에 대해 상당한 불만이 표출됐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이번 선거 결과 지난 대선은 한나라당에 대한 적극적인 선호의 결과가 아님이 나타났다. 실용적 보수주의를 통한 변화의 기대는 반영됐지만 그에 못지않은 불안감도 드러났다. 또 한나라당의 공천 과정에서 절차상의 정당성 문제를 국민들이 비판적으로 본 것 같다. 그 결과 친박연대나 무소속 쪽으로 몰려갔다.

▶사회=공천 과정을 놓고 잡음이 많았다. 민주당의 경우에도 박수를 많이 받았지만 비판도 못지않았다.

▶강=한나라당은 공천의 명분이나 원칙을 못 정했다. 절차상으로도 문제가 있었다. 공천 탈락자들이 한나라당을 뛰쳐나가 독자 출마하는 여건을 만들어 준 셈이다. 민주당은 당의 주인인 당원이나 열성 지지자가 아닌 소수의 외부 인사가 전권을 발휘한 기형적인 형태였다.

▶장=정당의 후퇴 현상이 심각하게 드러났다. 경선의 일부 부작용을 들어 정당 엘리트들이 공천을 독과점하는 퇴행이 일어났다. 무소속이나 친박연대 같은 유사 정당이 생긴 지 두 달 만에 우수한 성적을 냈다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김=정당 민주주의를 위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외국처럼 선거 3개월 이전에 공천을 끝내도록 한다든지 하는 법개정이 필요하다. 비례대표도 문제다. 비례대표 제도의 취지는 직능대표 같은 전문가를 국회에 보내자는 것인데 결과를 보면 그렇지 못하다.

▶사회=투표율이 46%로 지방선거를 포함해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총선에서 50% 밑으로 내려간 적은 없다. 이유가 무엇인가.

▶장=정치에 대한 전반적인 기대감 하락이라는 요소도 있겠지만 정당 책임론을 다시 제기해야 한다고 본다. 이번엔 정당이 사실상 문을 닫았다. 여야 정당이 뚜렷한 이슈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그래서 특히 젊은 유권자들이 등을 돌린 것이다.

▶김=동의한다. 비전이나 정책이 거의 없었다. 안정과 견제라는 추상적 개념으로 선거를 치르려고 했다. 또, 지난번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던 일부 중도 세력이 정권 초기 실망감으로 투표를 거부한 것도 이유로 꼽을 수 있다.

▶강=공천이 너무 늦어 지역 유권자들이 후보자를 모르거나 전혀 접촉하지 못한 상태에서 투표해야 했다. 의무투표제 도입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투표가 권리였지만 민주주의를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하기 위한 시민적 의무로 만들어야 한다.

▶사회=선거운동 과정에서 없어진 줄 알았던 돈 선거가 적발되고 관권 선거 논란도 일었다.

▶강=금품 살포는 지방선거 수준에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보고 있었다. 여전히 금품 선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관권 선거 부분은 논의가 필요하다. 정치인인 대통령에게 어느 정도 중립을 요구해야 하느냐 고민해야 한다.

▶김=행정가로서의 대통령과 정치인으로서의 대통령이 있다. 선거 과정에서 (이 두 역할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대통령도 어느 정도의 정치적 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한 개인의 행위에서 정치적·비정치적 의미를 분리하기가 어렵다.

▶장=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를 법으로 풀려고 했었다. 결국 제대로 되지 않았다. 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정치인들이 풀어가야 하는 정치 문화적 문제다.

▶사회=이번 총선에서도 지역 감정을 부추기는 경우가 많았다.

▶김=지역주의는 약화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역주의를 극복하려면 계층이나 이념 등 다른 논점이 활성화돼야 한다. 규범적으로 비난한다고 해서 바뀌지 않는다.

▶장=민주화 이후의 시대를 맞아 국민에게 무엇으로 다가갈지 고민해야 한다. 선거 과정을 통해 여야가 갖고 있는 능력이 지극히 부족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결국 가장 확실한 방법인 지역주의로의 회귀를 택했다.

▶강=지역주의의 속성 자체는 변화했다. 예전 지역주의에 정치적 속성이 있었다면 지금은 경제 문제와 연관돼 있다. 영·호남 출신이어도 수도권에 있는 사람들은 다르게 움직인다. 지역주의의 분리가 이뤄졌다.

▶사회=친박연대의 선전이 인상적이다. 그 원인과 여파는 무엇인가.

▶강=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주도하는 실용적 보수라는 새로운 주류에 불만을 가진 보수 세력이 적지 않다. 박근혜로 상징되는 전통 보수 세력이다. 또 하나는 이 대통령의 대안으로 손학규가 아니라 박근혜를 바라본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이명박의 대항마로 박근혜를 생각한다.

▶장=우리나라 정당은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다른 모든 가치를 압도한다. 이를 위해 있는 것을 둘로 쪼개기도 한다. 친박연대는 사실상 한나라당의 외곽 부대다. 유목민들이 풀을 찾아 여기저기 천막을 쳐 놓듯이 쉽게 이동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사회=한나라당과 친박연대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아울러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어떻게 될 것 같은가.

▶강=비례대표는 개별적으로 탈당하는 순간 의원 직을 상실하므로 당대당 통합 외엔 방법이 없다. 당권을 박근혜에게 일정 부분 양보하거나 공유한다는 전제가 필요한데 쉽지 않은 문제다. 박근혜는 ‘박근혜 계보’라는 별도의 계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정치적으로 승인받게 됐다. 정치 사상 처음으로 집권당 안에 대통령 외의 공식적인 경쟁 세력이 만들어졌다.

▶장=이명박 정부가 정책을 효과적으로 끌고 나가려면 기본적으로 당내 비주류와 친박연대와의 협상이 중요해질 것이다. 이후 통합민주당과 논의하는 두 단계 협상이 될 것이다. 협상의 절박함을 대통령과 한나라 당이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김=국정 안정을 위해 한나라당은 통합을 서둘러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박 대표의 위상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국 운영 주도권을 일정 부분 분점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사회=이재오 의원이 떨어졌다. 이 대통령이 당을 직접 장악해 끌고 갈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데, 한나라당 내 리더십은 공백인 상태로 가게 되나.

▶장=마땅한 대안이 없을 때 정치인들의 선택은 집단 지도체제다. 한나라당도 집단 지도체제 내지 합의제로 당 리더십을 운용할 것이다. 이제는 두 단계로 협상해야 한다. 대운하·FTA·규제 완화 등 이슈를 놓고 먼저 여당 내에서 협상해야 하고, 이후 야당과 협상해야 한다.

▶김=한나라당과 이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판적 학습을 해야 한다. 당이 청와대의 시녀가 되는 양상인데도 대통령은 계속 당정 분리를 얘기하는 모순된 상황이었다. 결국 이 대통령의 생각이 중요하다. 당에 일정한 권리와 역할을 줘야 한다.

▶강=이재오의원 떨어져 정치적 손실이 클 것이다. 예전 방식대로 ‘내가 끌고 갈 테니 따라와’하는 방식은 문제가 될 것이다. 정무적 시스템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가 핵심이다. 정무 기능의 활성화가 중요하다.

▶사회=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총선에서 떨어졌다. 민주당 내 리더십은 어떻게 될 거라 보나.

▶김=민주당은 자신에게 맞는 노선과 정치적 리더십을 만드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유권자들은 민주당을 한나라당에 맞서 다른 비전과 이념·정책을 제시하는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 기존 당을 끌어왔던 손학규·정동영·강금실 세 사람이 모두 원외에 있다. 리더십 위기는 대단히 크다.

▶강=총선 패배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리더십의 세대교체 요구가 당내에서 자연스럽게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에서도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 새 비전을 제시하고 끌고 나가야 한다.

▶장=아이디어 빈곤이 심각한 문제다. 앞으로 이명박 정부에 맞서는 반대 정책이 민주당의 핵심이 될 텐데, 이 과정에서 새로운 세력이 등장할 것이다.

▶사회=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 진보 정당이 선전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장=이번 진보 정당 후퇴의 큰 이유는 2년차 증후군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로 진보 진영 내부의 갈등이 드러났고, 외부적으로도 글로벌 시대 노동정책의 미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으며 남북 관계 변화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김=국민의 눈높이가 중요하다. 국민을 계몽하려고 했지,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이 겪고 있는 어려움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데는 실패했다.

▶강=민노당이 4년 전에 제도권 안으로 들어왔지만 여전히 운동권의 정서, 통일운동·노동운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국민에게 노출했다. 유권자를 끌어들이고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정리=권호·이진주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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