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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이색문화공간>15.호주 프리맨틀 어린이문학센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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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못쓰는 감옥을 어린이의 천국으로!』하루 9천명의 죄수가 우글거렸던 대형 감옥,거기서도 정신병을 앓는 문제수들만 격리수용하던 정신병원이 어린이들의 「문학교육」산실로 변신했다.
호주의 3분의1을 차지하는 웨스트오스트레일리아주의 수도 퍼스에서 19㎞ 떨어진 외항 프리맨틀에 위치한 「프리맨틀 어린이 문학센터」(Fremantle Children's Literature Center).
지난달 23일 오전 이곳의 홀에서 시작된 「퓨처의 책탐험」시간.호주 원주민 애보리진.백인.동남아인등 다양한 피부색의 어린이들이 저명한 아동문학가 퓨처의 『로즈 가든』을 놓고 「책탐험」에 들어갔다.
『속표지에는 제목아래 집이 하나 있네요.무슨 생각이 나나요.
』센터대표이자 강사인 레슬리 리스가 묻자 대개 국교 3,4학년인 스무명의 어린이 손이 한꺼번에 올라간다.
『멋있게 보이려고요』『첫 페이지니까 집을 하나만 그렸어요』『뭔가 이야기를 꺼내려고요.』 한 어린이가 그럴듯한 의견을 내자강사는 말을 잇는다.『다들 좋았어요.그럼 다음 페이지로 가봐요….작가아저씨는 왜 어두운 집과 밝은 집을 나눠서 그렸을까?』이들의 주위에는 1922년부터 지난해까지 호주 아동문학가들이 펴낸 주요 저서 74권이 연도별로 진열돼 있다.
홀에 붙은 또 다른 방에서는 1,2학년생 10여명이 엘리자베스 헛치스가 쓴 『브랫캣(새끼고양이)』을 자기들 맘대로 재구성하는 작업에 몰두해 있다.
호주에 입양된 한국어린이 재리가 길잃은 고양이를 발견하고 엄마 몰래 키우며 정을 붙인다는 줄거리를 10개 단락으로 나눈 뒤 조를 짜 단락마다 다른 얘기를 만드는 것이다.
아이들 뒤에는 작가 헛치스가 『브랫캣』의 모델로 삼은 동네 한국소녀 이지은(11)양과 그녀의 고양이 「나비」의 사진및 작가의 작품구상 메모.초고.낙서등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이 센터는 어린이에게 문학의 즐거움을 몸에 배도록 하는 게 설립취지.국민학교.중학교.고등학교까지 과정이 개설돼 있다.딱딱한 학교식 국어교육이 아니라 작가의 구상부터 책의 출판까지 문학이 이뤄지는 전과정을 아이들이 보고 배우는 방식이다.
호주의 주요 아동문학가를 초빙,아이들에게 자신의 글쓰기를 공개하는 코너도 중요 아이템.한해에 작가 30여명이 열흘씩 묵으며 문학교육과 함께 인도양을 배경으로 신작 구상까지 하고 간다는 것이다.
「동심과 문학의 행복한 만남터」인 이곳은 불과 4년전까지 서호주 최대의 교도소인 「프리맨틀 프리즌」내 정신병원으로 쓰이던곳.바로 앞에는 1855년부터 1백36년동안 수십만명의 죄수를수용했던 본관건물이 5m높이의 석회벽과 레이저철 조망에 둘러싸인채 14에이커(약 1만7천평)에 달하는 거대한 형체를 드러내고 있다.
91년 이 감옥이 시설노후화로 문을 닫게 되자 그때부터 건물의 용도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영국출신 작가로 호주에 머무르던 레슬리도 전부터 꿈꾸던 어린이 문학요람을 제안했으나 주정부.국립도서출판협회.은행협회.복권협회등으로부터 89만 호주달러(5억4천만원)를 얻어낸 이듬해 봄에서야 꿈을 이루게 된다.
감옥전체의 15분의 1쯤 되는 이 센터는 유명작가 스무명의 초고.메모들이 고이 간직된 전시실을 비롯,5개의 학습실이 있다. 『작가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품을 구상한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것』이라는게 레슬리의 설명이다.
이외에도 문제환자를 가두기위해 설치했던 지름 5㎝의 두꺼운 빗장이 남아있는 독방 세군데는 작가와 가족이 쉬고가는 숙소.식당으로 변신해 레슬리의 또다른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매해 4학기로 운영되는 프리맨틀 어린이 문학센터는 학기마다 호주전역 1백여 학교 학생들이 정식수업으로 인정된 센터의 문학강좌를 이수하고 간다.
***호주 프리맨틀에서 글=姜贊昊기자 사진=吳宗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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