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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작가 프로그램 참여 5인방 "작가이기 전에 가족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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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 경기도 광주시 쌍령동 잣나무가 벽처럼 둘러선 영은미술관 입주 작업실에서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고 있는 화가 방혜자씨는 "해질녘 창문을 내다보면 그대로 한 폭의 작품"이라고 천혜의 자연 환경을 자랑했다.

▶ 식당에서 미술 얘기를 나누는 영은미술관 입주작가들.

"늙은이가 잠이 없어 새벽 3시쯤 일어나 보면 함연주씨 작업실에는 아직 불이 환해요. 좁쌀만한 스팽글(장식구슬)을 불에 달궈 하나하나 찍어나가는 정성이 내 눈에는 티끌로 우주를 만들어가는 것처럼 보이죠."

대선배인 방혜자씨의 칭찬에 함씨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경기도 광주시 쌍령동 8번지 영은미술관(관장 박선주)의 창작 스튜디오에 모인 5명 작가들은 가족이라 해도 좋을 만큼 정이 들었다.

2년 기한으로 작업실을 거저 쓰는 입주작가 프로그램(레지던시)에 들어온 뒤 얼굴이 비슷해질 정도로 마음을 나누어 왔다. 방혜자(67).진유영(58)씨는 서울대 사제지간이고, 남기호(43).최지만(34)씨는 형제 같다. 막내둥이 함연주(33)씨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내리사랑과 맞먹는다. 4년째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김미진 부관장은 "점심이나 저녁 시간에 식당에 모두 모여 밥을 먹으며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학교가 따로 없다"는 말로 그들의 아름다운 관계를 표현했다.

이들이 마련한 전시회 제목'나는 너와 같이, 너는 나와 같이'(18일~5월 9일.영은미술관)는 그 마음을 담기에 맞춤하다.

올 가을 이곳을 떠나기 전에 그동안 각기 작업한 성과를 내보이는 자리이자 미술로 맺어진 영혼의 교류를 고백하는 장소다. 서로에게 작품의 원동력이 되었던 '마음의 침묵'이 영원히 이어지리라는 약속과도 같은 발표회다. 방혜자씨는 "이 작품으로, 이 헤어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매혼처럼 연결된 우리 작업이 계속되리라는 믿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진유영씨는 "'나는 어디에 있나'에 줄곧 매달려온 나로서는 이번 전시가 꼭 나를 위해 준비된 느낌"이라고 했다. '너'에게 가기 위해 '내가 작아지는' 과정을 디지털과 수채화 작업으로 해온 그는 700여장 쪽그림으로 담은 근작 '디딤'을 "너와 내가 서로를 해방시키며 사랑에 이르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작업하는 방혜자씨는 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간, 동양과 서양을 잇는 '빛과 숨결'로 영은 창작 스튜디오에서의 평온하면서도 치열했던 나날을 선보였다. "기억을 떠올리면 슬픔이 차오른다"는 남기호씨는 동판을 부식시키고 옛 물건들에서 건져올린 이미지를 쪽빛으로 각인한 '일상의 기억'연작을 추억으로 남겼다.

영은미술관의 창작스튜디오는 최근 들어 가족 단위 나들이 손님들의 문화여행지로도 이름이 났다. 석양 풍광이 기막힌 작업실에서 자연과 함께 미술을 감상하고 도자기 실습도 할 수 있어 알음알음 입소문 따라 찾아오는 이들이 늘었다.

대유문화재단의 지원으로 미술관을 꾸려가는 박 관장은 "앞으로 미술 관련 세미나 개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마련 등 할 일이 많다"고 의욕을 내비쳤다. 031-761-0137.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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