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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스살롱>李海瓚 서울시 부시장부인 김정옥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어서오세요』하며 함박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취재진을 맞은 그에게서 받은 첫 인상은 외유내강(外柔內剛).
아침부터 쏟아진 비로 습기가 많고 약간 쌀쌀함을 느끼던 참에그가 『비도 내리는데 이렇게 누추한 곳에…』라며 내놓은 것은 한접시의 먹음직한 고구마였다.이해찬(李海瓚.43)서울시 정무부시장의 부인 김정옥(金貞玉.42.서울 관악구 신 림9동 건영3차아파트)씨의 손님맞이는 이렇게 소박했다.
원칙과 신념을 중시하는 李부시장이 가끔 「강골」로 불리는데 반해 金씨는 「편안하고 순한」 성품으로 「부부간의 조화」를 이루어낸다는 느낌이다.『애기아빠(金씨는 남편을 이렇게 부른다)가요즘 더 바빠졌어요.부시장이 되고 귀가시간이 매 일 밤12시를넘기는 바람에 대화시간이 즐어든게 제일 아쉽지요.』 요즘 李부시장의 근황을 묻자 그는『서울시 업무를 처음 접하다 보니 아무래도 공부할 게 많겠죠』라며 말문을 뗐다.특히 취임 바로 전날터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눈코뜰 새 없이 바쁘지만 그는 『남편이 성심껏,열심히 일할 것으로 믿고 있다』며 평생동지다운 신뢰를 보냈다.
유명한 운동권 출신으로 한때 억압체제 아래서 두번이나 투옥됐던 이력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해맑기만 한 남편을 처음 본 것은 72년.
부산에서 사업을 하는 유복한 집안의 막내둥이였던 金씨는 이화여대 사회학과에 입학한 뒤 서울대 사 회학과 학생들과의 학술모임에서 청년 이해찬을 만났다.
『학술모임을 가지면서 조금 가까워질 무렵 애기아빠가 덜컥 감옥에 갔습니다.』 74년에 일어난 민청학련 사건이었다.이때부터金씨의 뒷바라지가 시작돼 부산에서 올라오는 용돈으로 부모 몰래책을 사 넣어주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키워나갔다.
이들은 결국 79년 백년가약을 맺었지만 곧 다시 헤어진다.이번에는 김대중(金大中)내란음모사건.외동딸 현주(賢柱.16)가 생후6개월된 때였다.金씨는 신림동에 「광장서적」이란 책방을 내고 혼자 생활을 꾸려나갔다.
남편 옥바라지와 생계를 책임지는 고된 생활이었지만 그는 결코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남편이 하는 고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이후 李부시장이 국회의원이 되고 지금은 부시장 업무를 보고 있지만 金씨는 이 를 결코 「생활이 나아졌다거나 형편이 좋아졌다」는 식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국가와 국민을 위한 봉사의 기회지 결코 한가정의 신분상승의 계기가 아니라는 믿음 때문이다.
광장서적과,한때 운영했던 설렁탕집은 시동생과 시누이에게 넘겨주고 잠시 쉬던 그는 다음달부터 남편의 지구당(관악乙)사무실과지역단체에서 주관하는 주부교실에서 주부들에게 영어를 가르칠 계획이다. 〈金鍾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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