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현지르포>4.군.공무원 생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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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집트 사람들에겐 5천년 문명의 후예라는 자존심 같은 게 있다. 학력(學歷)을 묻는 건 실례다.하지만 간단하게 학력을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성인 남자에게 해당하는 얘기지만 軍복무를 얼마나 했느냐고 물어보면 된다.
1년6개월이라고 대답하면 최소한 고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다.그러나 3년이라면 그 미만의 학력소유자다.징병제를 택하고 있는 이집트에서는 학력에 따라 복무기간이 달라진다.그래도 불평이 없다.실업자로 지낼 저학력자들을 3년씩이나 국가가 먹여주고 재워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는 해석도 있다.
카이로에 사는 정부 공무원 T는 1년반동안 군복무를 한 고학력자다.T의 출근시간은 오전9시.그러나 실제는 동료 공무원들과마찬가지로 9시30분쯤 출근한다.신문지에 둘둘 말아온 셰미(전통식빵)를 샤히(아랍식 홍차)에 곁들여 먹으며 아침식사를 때우고 나면 10시가 넘는다.두세시간 남짓 일을 하고 오후1시가 되면 슬슬 퇴근 준비를 한다.오후2시가 정부 공무원의 법정 퇴근시간이다.이집트 정부 관공서에 볼 일이 있으면 오전11시에서낮12시 사이에 가야만 허탕치는 일이 없다.
근무시간이 짧은만큼 봉급도 적다.T의 월급은 2백50파운드(약 7만원).이 돈으론 도저히 네식구가 먹고 살 수 없다.그래서 오후에는 나비넥타이를 매고 식당종업원으로 일한다.팁까지 합하면 부업으로 얻는 수입이 공무원 봉급보다 낫다.
T의 한달 총수입은 6백파운드.이걸로 근근이 살면서도 올해 나이 6세인 큰 아이만큼은 1년 학비가 1천5백파운드나 드는 사립학교에 보낸다.공립학교는 학비가 年 50파운드밖에 안되지만학급당 학생이 60~70명인 콩나물시루 속에서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이집트의 1인당 국민소득(GNP)은 7백달러에 불과하다.그러나 사람 사는건 어디나 마찬가지다.크건 작건 불평등이 있고,삶의 곤고(困苦)함이 있다.
다만 그걸 받아들이고,해소하는 방식이 서로 다를 뿐이다.
[카이로=裵明福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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