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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잊지 못할 바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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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결승전 3번기 2국>

○·박영훈 9단( 1패) ●·이세돌 9단( 1승)

제16보(200~214)=“집 세기도 힘드네요”라고 비명을 지른 사람은 김성룡 9단. “그러나 백이 이긴 건 확실합니다.” 박영훈 9단이 200에 가일수한 것은 시체에 못질한 수다. 이세돌 9단의 움직임이 214에서 멈췄다. 돌을 던졌는데 항복이라기보다는 ‘끝내 쓰러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천하를 양분한 이런 바둑은 다시 볼 수 없을 테니까 집이라도 한번 세어보자. 흑A로 이었다 치고 위쪽 흑집은 135집. 아래 백집은 143집. 반면으로 백의 8집 승. 덤까지 14집반 승. 보기보다는 차이가 꽤 있었다.

이 판은 흑이 극단적인 포도송이 형태를 각오하고 백의 대마를 잡았으나 결과적으로 백의 대형 사석전법에 걸려든 희귀한 바둑이다. 80여 수 전 ‘참고도’의 장면이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131에서 백 대마는 한 수 부족. 패가 있지만 천지대패니까 팻감이 없다. 그래서 ‘상황 종료’라고 생각했는데 백엔 그냥 132로 두는 비장의 한 수가 있었다. B로 패를 걸지 않고 가만 놔두니 흑의 운신은 갑자기 거북해졌다. 대마를 들어내려면 한 수가 아니라 두 수가 필요하다. 이 바람에 결국 우하 흑이 잡혔고, 흑은 대마를 잡고도 비세에 몰렸다. 나쁜 모양은 역시 대가를 치르는 것일까. 결승전은 1대1이 됐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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