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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과 짬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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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요즘 충청 지역 경로당들은 공사 중이다. 기름보일러를 떼내고 전기보일러를 까는 작업이 한창이다. 노인에겐 가스나, 찌꺼기가 없는 전기보일러가 훨씬 편하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등유를 쓰는 기름보일러의 경우 99㎡(30평) 난방비용이 월 53만원. 반면 심야전력을 사용하는 전기보일러는 월 25만원이면 충분하다. 얼마 전 심야전력 요금이 18% 올랐지만 등유에 비하면 여전히 반값도 안 된다. 정부가 기름값은 놔두고 전기값만 묶으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지난겨울, 한전은 죽을 맛이었다. 원래 전력 사용량은 에어컨을 쓰는 여름철이 피크다. 그런데 지난겨울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전력사용량이 사상 최고치에 근접하자 한전은 노후 발전소까지 돌렸다. 당초 심야전력 할인제도는 원자력발전소의 남아 도는 전기를 소비하기 위해 도입했다. 그러나 값비싼 전기를 펑펑 낭비하는 쪽으로 변질돼 버렸다. 지난겨울에는 밤마다 수입산 LNG나 중유를 때는 화력발전소의 전기가 전국 83만 가구에 공급됐다. 그것도 생산원가의 60%도 안 되는 헐값에.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하면 심야전기 요금이 두 배는 올라야 정상이다. 정부의 인위적인 압력이 풍선효과와 에너지 낭비를 초래한 셈이다.

좋은 의도가 파국을 부른 역사적 사례는 숱하게 많다. 영국은 나폴레옹을 물리친 뒤 여유가 넘쳤다. 고리대금은 신사답지 못하다며 멀리했다. 1816년에는 연 이자율이 5%를 넘지 않도록 법률로 못 박았다. 당시 중남미 국가들은 한창 개발자금에 목말라 있었다. 전 세계 25%를 식민지로 차지한 영국은 돈이 남아돌았다.

중남미 국가들이 프랑스에서 엄청난 고금리로 채권을 발행한 뒤 영국으로 들여오는 편법이 기승을 부렸다. 채권 브로커들만 돈을 긁어담았다. 이들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고리대금을 불법화한 국회의원과 장관까지 ‘얼굴 마담’으로 영입했다. 하지만 영국은 바다 건너 현지 사정을 너무 몰랐다. 프랑스에서 채권이 건너온 탓에 중남미 경제에는 캄캄했다. 1820년 멕시코가 채무불이행을 선언하자 갑자기 공황이 닥쳤다. 영국의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이 파멸에 빠졌다.

정부가 최근 52개 생필품을 특별관리 대상으로 지정했다. 서민 생활을 안정시키겠다는 의도야 나무랄 게 없다. 하지만 풍선효과가 겁난다. 누리꾼들은 자장면 값은 묶으면서 왜 짬뽕은 안 잡느냐고 야단이다.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새 정부 경제팀이 물가 안정의 해법을 찾기보다 방해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시장원리를 외면하면 부작용만 커진다는 것이다. “한국이 물가 압력을 줄이려면 국제유가가 떨어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무디스의 지적에 자꾸 눈길이 간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