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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생각이 났다.그 아름다운 도시의 중앙통에줄지어 있던 가로수 유도화(柳桃花).
거목이었다.분홍 꽃나무만이 아니라 하얀 유도화도 있었다.
어머니 손목을 잡고 유도화 거리를 가며 까닭 모르게 들뜨는 즐거움을 느꼈다.유도화는 축제날의 줄등불 같았다.벌써 스무해도더 된 먼 추억의 뒤안길을 그 꽃등은 여지껏 은은히 비춰주는 것이다. 제주도의 유도화는 우람한 거목은 아니다.그러나 적당한키로 사람을 마주하고 있어 더욱 정답다.
제주 공항에서 서귀포까지 제1관통 도로로하여 택시로 달렸다.
한라산 산자락을 타고 제주섬을 종단(縱斷)하는 멋진 길이다.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자귀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아,어머니의 나무! 「자귀나무」하면 곧 어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새 집을 지으며 넓고 양지바른 부엌과 자귀나무 있는 뜨락을 무엇보다 소원하던 어머니.그 어머니의 나무가 여기에 저렇게도 많이 피어 있다.제주도에 오길 잘했다고 또 한번 속으로 뇌었다. 젖어머니 집은 서귀포 변두리의 아늑한 마을에 있었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언덕 마을이었다.
띠로 지붕을 이은 정갈한 초가.
「이문간」이라 부른다는 대문 위도 띠지붕으로 이어져 있었다.
곱게 다져진 널찍한 흙마당을 에워싸 「안거리」라는 안채와 「밖거리」라는 사랑채,그리고 두 개의 별채가 입 구(口)자 모양으로 지어졌다.원래는 헛간과 외양간으로 쓰이던 별채를 객실용으로 깨끗이 단장해 놓은 것이었다.
안채 마루에서 젖어머니가 뛰어 내려와 아리영을 끌어안았다.
『아이구 아기씨! 이게 얼마만입니까? 누추한 데지만 어서 올라오세요.』 진갈색의 육중한 우물 마루엔 새 화문석이 깔려 있었다.아리영 때문에 새 돗자리를 깔아 놓은 듯했다.
『오신단 전화를 받고도 곧이 들리지 않았어요.정말 이 집에 묵어주실 겁니까?』 『아이구,더 고와지셨네요.선녀가 오신 줄 알았어요.』 『그래,아버님께서도 안녕하시지요.농장이랑 목장 일도 잘 되시죠?』 젖어머니는 매끄러운 서울말을 썼다.
시댁이 서울 토박이 집안이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오늘은 뭣부터먼저 말해야 할지 몰라 횡설수설하며 간간이 제주말의 억양을 풍겼다. 낚싯대를 든 장년의 사나이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아들이에요.』 젖어머니가 아리영에게 소개했다.무속(巫俗) 연구를 한다는 그 아들인가.
검게 그을은 얼굴의 다부진 사나이가 하얀 운동모를 벗고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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