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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통제의 추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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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호 30면

요즘 정부의 물가 대책을 보자면 1972년 가을 영국의 에드워드 히스 총리가 떠오른다. 그는 경기가 침체하고 물가마저 오르는 영국병을 고치겠다며 90일간의 물가 동결을 전격 선언했다.

현장경제

당장 임금·물가위원회가 꾸려졌고, 담당 부처의 장관들은 아침마다 회의실에 모여 아파트 임대료는 물론 배관공 수리비며 택시비, 심지어 미용실 요금까지 일일이 통제했다. 그러나 결과는 비참한 실패로 끝났다.

영국병은 79년 마거릿 대처 총리가 집권한 뒤 과감한 시장경제 정책을 펴고 나서야 치유됐다.

지난주 청와대는 ‘은행 송금 수수료를 내리도록 협조하라’며 은행연합회에 공문을 보냈다. 많은 사람이 은행의 수수료 횡포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건 사실이다. 1000원을 송금하기 위해서도 3000원의 수수료를 물어야 하는 현실이다. 더구나 지금의 은행들은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 신세를 지고 살아나지 않았는가. 지금 은행들이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장사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청와대의 충정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시민도 내심 크게 반긴다.

그러나 몇 가지 곱씹을 대목이 있다. 무엇보다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 구시대적 통제 정책이란 점이다. 이렇게 해선 효과는커녕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 정부는 이미 52개 물가관리 품목을 정하고, 음식물 원가까지 일일이 분석하고 있다. 이는 새마을운동 시절을 연상시킬 정도다. 만약 은행 수수료처럼 시민이 불만을 제기하는 요금이 더 있다면 청와대가 모두 손을 봐 줄 것인가.

해답은 경쟁을 촉진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지금의 수수료가 폭리라면 이는 현재 은행들이 진입장벽 안에 안주하며 독과점적 횡포를 부리는 데서 출발한 것이다. 증권업계에선 온라인 증권사들이 생기면서 경쟁이 심해지자 매매 수수료가 뚝 떨어진 전례가 있다. 은행업에도 이제 온라인 은행 설립이나 저축은행의 시중은행 승격 등의 방식으로 독과점 구조를 깨야 한다. MB 정부도 장기 과제로 이런 구상을 내비쳤지만 발걸음을 재촉할 일이다.

“정부는 시장에서 결정된 결과가 불공정하다고 판단할 때 나선다. 그러나 가격 통제는 돕고자 하는 사람에게 피해를 줄 때가 많다. 임대료를 규제하면 집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최저임금제는 다른 근로자의 일자리를 잃게 한다.”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인 그레고리 맨큐의 경제원론 중 ‘시장의 작동원리’에 나오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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