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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로 보수로…중도가 변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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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호 06면

동작을에서 만난 한나라당 정몽준 후보(왼쪽)와 통합민주당 정동영 후보. 이들의 승패는 두 당의 당내 역학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연합뉴스

18대 총선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총선은 대선 후 4개월 만에 치르는 선거라는 점에서 1988년 제13대 총선과 닮았다. 물론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88년 당시에는 노태우 대통령의 당선에도 불구하고 ‘3김(金)’을 축으로 한 극심한 지역 대결 구도에 따라 사상 초유의 여소야대 정국이 조성됐다. 하지만 이번 선거의 경우 여론조사기관들의 분석은 대체로 한나라당이 전체 의석 수(299석)의 절반을 훨씬 넘는 160∼170석 확보의 압승을 예상하고 있다.

정치 지형 바꾸는 18대 총선

진보-보수 지도 바뀌나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공식적으로 밝힌 총선 목표는 과반(150석 이상) 달성이다. 하지만 현재 판세 분석으로 볼 때 엄살로 들린다. 경합 지역에서 대부분 지는 것을 가정해도 과반 달성이 무난하다. 전 상임위에서 과반을 차지하는 실질적 의미의 과반(168석 이상)도 가능한 상황이다.

여기에 범(凡)보수 진영인 자유선진당도 10석 이상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친박연대, 친박 무소속 연대 등 이른바 ‘친박 보수’도 영남 지역 5∼10곳에서 선전하고 있다.
반면 진보 진영은 급격한 세 위축이 불가피하다. 지난 총선에서 과반(152석)을 차지했던 열린우리당의 후신인 통합민주당은 75∼90석에 그칠 전망이다.

지난 선거 때 10석을 획득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같은 진보세력도 내부 분열과 급격한 보수 바람 속에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쳐 7∼8석을 얻기도 쉽지 않다.결국 18대 국회는 90년대 이후 유례없는 보수 지배구조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연구실장은 “이번 선거는 사실상의 양당제가 깨진 총선”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초기 파행으로 인해 민주당의 견제론이 들어갈 공간이 분명했지만 17대 총선 당시의 박근혜 대표처럼 견제 심리를 동력화할 리더십을 야당이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중도층의 태도 변화에서 원인을 찾는다. 김 교수 분석에 따르면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에서 유권자 집단이 ‘4(진보)-2(중도)-4(보수)’의 구도였다면 지난 대선 때는 ‘3-4-3’의 중간층이 두터운 구조로 바뀌었다는 것. 이 중도층이 보수 후보에게 표를 던지면서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이회창 후보에게 64%의 표가 몰렸고 이번 총선도 비슷한 흐름으로 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치컨설팅 업체인 ‘민’기획의 박성민 대표는 이번 선거를 1990년 3당 합당 당시의 거대여권 체제(민자당 218석)의 복원으로 본다. 민자당은 3당 합당 후 2년 뒤인 92년 총선에서 과반에 한 석 모자란 149석을 얻었지만 이는 정주영씨가 이끄는 국민당(31석) 돌풍이라는 돌발 변수 때문이었고, 이것만 없었다면 170석 이상의 의석 확보가 가능했다는 것.

이후 95년 지방선거에서 시작된 DJP연합이라는 강력한 호남-충청 지역 연합의 영향을 받은 15, 16대 선거와 2004년 탄핵 역풍을 맞은 17대 선거에선 보수가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하지만 이 같은 돌출 변수 없이 치러지는 이번 선거는 보수와 영남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한나라당이 원내 과반을 달성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분석이다.
 
외연 확대에 실패한 진보
진보 세력의 부진은 과거 진보 정권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는 비판 여론이 ‘새 정부 견제론’을 아직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세대 김기정 교수는 이번 총선의 의미에 대해 “5년 단임이라는 초조감에다 계몽정신에 빠져 무리하게 밀어붙였던 과거 진보정권의 개혁 드라이브에 대한 피로감이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치러지는 선거”라고 평가했다.

진보 세력이 외연 확대에 실패한 것도 낮은 지지율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부진은 지난 5년간 자신들의 가치인 인권·분배·책임 등에 대해 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이슈를 잘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박성민 대표는 “17대 총선 때 민노당의 약진은 일부 화이트 칼라층이 민노당에 대해 일종의 호기심을 가지고 표를 던진 측면이 크다”면서 “노선 투쟁으로 분열되는 모습을 보고 이들 중 상당수가 등을 돌리고 있는 형국”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야권이 파생 공세를 펴고 있는 경부운하 문제와 등록금 절반 인하, 서민 물가 안정 등의 민생 이슈도 좀처럼 쟁점으로 뜨지 않고 있다. 정치컨설팅 업체 폴컴의 윤경주 대표는 “한나라당 공천 파동과 무소속 후보 난립으로 정책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면서 각종 정책 이슈로 무장한 진보세력들은 더욱 설 자리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당권 경쟁 치열할 듯
벌써부터 친박 무소속 연대의 김무성 의원 등은 총선 이후 정계개편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실제 한나라당이 과반 달성에 실패하거나 과반에 턱걸이할 경우 현재 친박계 내부에서 제기되는 당내 권력 분점론이 현실화할 수도 있다. 친박연대나 친박 무소속 연대 후보로 당선된 의원들의 개별적인 한나라당 입당이나 당 대 당 통합이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자유선진당까지 포함하는 범보수 연합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계개편 가능성에 크게 무게를 두지 않는다. 중앙대 장훈 교수는 “한나라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해 친박연대에 손을 내미는 일은 별로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면서 “친박연대 등은 한나라당의 2중대 비슷한 애매한 위상으로 총선 후 상당 기간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선진당·친박연대 등으로 범보수 진영이 분화된 상태가 오히려 거여(巨與) 견제론을 차단하는 데 유리하다는 얘기다.
당내에서도 ‘친박’계의 상대적 위축과 ‘친이’계의 우세 속에 7월 전당대회를 겨냥한 정몽준·이재오 의원 등 계파 간 치열한 각축전도 예상된다.

숭실대 강원택 교수는 “친박연대든 친박 무소속 연대든 이들이 총선 후 뭉쳐 있기 위해서는 박 전 대표가 경쟁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면서 “박 전 대표가 당내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느냐가 이들에게는 중요한 만큼 박 전 대표는 이들 때문에라도 당 대표에 출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선진당은 원내교섭단체(20석)를 구성하지 못할 경우 정국의 한 축으로서의 입지를 구축하기 어렵다. 이 경우 선진당으로서는 친박연대나 무소속과의 연대를 통해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의 지도체제도 총선 이후 격랑에 휩싸일 수 있다. 현재 당에서는 내부적으로 80석 정도를 이번 총선 승패의 기준으로 보고 있다. 만일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손학규·박상천 대표와 정동영 전 장관 등이 책임 논란에 휩쓸리게 된다.

이 경우 이번 선거 과정에서 본격 대중 정치인으로 데뷔한 강금실 공동선대위원장이 6∼7월 전당대회에서 당권 도전에 나설 수 있다. 하지만 80석 이상을 넘길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이번 총선 공천에서 손 대표의 측근은 대부분 살아남았다.

비례대표도 1∼8번은 모두 ‘손심(孫心)’이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도 있다. 손 대표가 총선 이후 당내에서 상당한 영향력과 위상을 가질 것으로 보는 이유다. 단 그에게는 종로 지역구에서의 생환이 절체절명의 과제다.

민노당과 진보신당·창조한국당 등 군소정당의 경우 미미한 지지율에 그칠 경우 존립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MB 경제 살리기 힘 받나
이번 총선은 출범 한 달여를 넘긴 MB 정부의 국정운영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보수 세력이 의회권력까지 장악하게 되면서 성장과 효율·개방·안보 등의 보수 가치가 정책의 중심에 서게 된다. 한나라당은 과반의 수적 우세를 기반으로 한반도 대운하를 비롯해 감세, 금산분리(산업자본이 금융회사를 소유하지 못하게 하는 것) 완화, 공기업 민영화 등의 대선 핵심 공약을 본격 추진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번 총선 공약으로 ‘소득세 물가 연동제’를 내걸었다. 소득세율을 정할 때 물가상승분을 반영하는 이 정책은 많은 학자와 언론의 도입 요구에도 불구하고 과거 진보정권들이 완강하게 거부해 왔던 대표적인 감세 정책이다.

종합부동산세 완화와 민간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같은 노무현 정부의 핵심 부동산 정책을 재검토하는 문제도 긍정적으로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진보 진영이 반대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 문제도 올여름 이후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있다.

이런 ‘우파 드라이브’는 노무현 정부가 2004년 원내 과반 확보를 계기로 동력을 얻어 사립학교법 개정, 지역균형발전, 과거사 규명 등의 핵심 어젠다를 밀어붙였던 것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은 극심한 사회적 논란을 야기하면서 야당의 반대 투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때문에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김형준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실패도 결국 지나치게 자기 가치만 주장하다 사회 분열을 초래했기 때문”이라면서 “일방적인 보수로 흐를 경우 여론이 악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기업 규제도 완화해야 하지만 동시에 기업 책임성도 강도 높게 요구하는 식으로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강력한 MB의 우파 드라이브가 국론 분열을 심화하게 되면 이에 따른 여당 책임론이 확산되면서 앞으로 이어질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의 패배로 이어지고 의외로 초기부터 MB정부 국정운영의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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