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살인자에서 수사관까지, 의사들의 무한 변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6호 16면

아주 오래전부터 메디컬 드라마는 ‘감동’이라는 단어와 동일시되곤 했다. 사람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소명의식으로 극복하는 의사와 사선에 놓인 환자의 분투는 그 자체만으로도 허구를 넘어서는 진실된 감정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드라마가 놓쳐서는 안 되는 한 가지 요소가 무의식적으로 따라붙고 있었다. 환자가 죽을 것인가 살 것인가의 긴장, 그리고 만일 살아난다면 어떻게 살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 오랜 세월 ‘휴머니즘’이라는 외피를 고집하고 있었지만 사실 메디컬 드라마는 어떤 장르보다 팽팽한 긴장을 품은 스릴러의 요소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관능과 심리와 그 밖의 다른 많은 요소를 접목했던 스릴러 영화가 병원으로 눈을 돌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3월 27일 개봉한 영화 ‘어웨이크’는 2007년 한국영화 ‘리턴’이 소재로 삼았던 것과 비슷한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리턴’은 수술 도중 마취가 풀려 깨어난 어린 환자가 정신적 외상을 입고, 성장한 다음 그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복수를 시작하는 스릴러 영화였다. 이 영화에 비해 ‘어웨이크’는 보다 간결하고 압축적이다.

선천적으로 심장에 문제가 있는 젊은 백만장자 클레이(헤이든 크리스텐슨)는 심장 이식을 받기 위해 수술대에 올라간다. 그러나 클레이는 완전하게 마취가 되지 않아 의식이 깨어 있게 되고, 그런 상태에서 자신을 둘러싼 음모를 감지한다.

육체적인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해도 누군가가 자신의 육체를 해체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끝내는 눈앞에 드러난 자신의 뼈와 근육과 장기를 지켜보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무엇일 것이다. 독일 영화 ‘아나토미’는 바로 그런 순간에 주목했다.

그 영화에서 의사와 의대생들은 의식이 있으면서도 아픔을 느끼지는 못하도록 마취를 하고, 살아 있는 사람의 눈 앞에서 그 신체를 해부했다. 그러나 ‘어웨이크’는 그런 의학적인 기술보다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 듯하기에 조금은 몽환적인 클레이의 상태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이에 비해 4월 17일 개봉 예정인 ‘패솔로지’는 수술실을 보다 깊은 두려움의 근원으로 여기는 영화다. ‘어웨이크’에서 두려운 대상은 의사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 문제는 ‘누가 클레이를 죽이고 싶어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파생된 것이었다. 그러나 ‘패솔로지’의 주인공들은 의사다. 신체의 구조와 죽음의 원인에 대해 전문가인 그들은 심지어 합법적으로 위험한 약물과 메스까지 사용할 수 있다.

‘패솔로지’는 그런 점에 착안하여 완전범죄를 시도하는 의사들을 내세운다. 하버드대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테드(마일로 벤티미글리아)는 메트로폴리탄대학 메디컬센터 병리학 프로그램 팀에 들어간다.

테드가 오기 전까지 팀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자였던 제이크는 단번에 사인(死因)을 맞히는 테드를 질투하지만 동시에 묘한 동질감도 느낀다. 동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다음날 깨어난 테드는 부검 들어온 시신이 전날 들렀던 클럽 기도임을 알아보고, 병원에서 무언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다.

8일 OCN에서 시즌 4 방영을 시작하는 ‘하우스’는 이 두 편의 영화에 비하면 지금까지 봐 왔던 메디컬 드라마에 가까운 편이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이 드라마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우스’는 메디컬 드라마의 고전인 ‘ER’ ‘제너럴 호스피털’ 등과는 많이 다르다.

‘하우스’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환자가 실려오고 하우스(휴 로리) 박사와 그의 스태프가 병의 원인을 알아내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환자가 이상한 것을 먹지는 않았는지, 세균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있는 지역에 가지는 않았는지, 남들에게는 해가 없지만 그 환자에게만 해가 되는 무엇이 집에 있지는 않은지 조사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하우스’의 의사들은 ‘CSI’의 수사관들처럼 증거를 수집하고 원인과 결과를 추론한다. 이처럼 미스터리를 밝히는 재미도 있지만 ‘하우스’의 가장 큰 재미는 어떤 순간에도 위선이라고는 모르는 하우스의 사람 됨됨이다. 그는 메디컬 드라마의 착한 의사들처럼 환자와 함께 아파 하지 않는다.

단도직입적이고 냉소적이며 신랄하다. 때로는 그런 인간성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는 다른 의사들이 죽음 앞에서 초연한 꼬마 환자를 보며 그 용기를 칭찬하고 연민을 보낼 때 뭔가 문제가 있지 않으면 그런 용기를 보일 수 없다고 비아냥댄다. 그런데 그게 진짜였다. 그 꼬마 환자는 뇌에서 두려움을 관장하는 부분에 문제가 있었기에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1990년대를 풍미했던 드라마 ‘종합병원’ 시즌 2가 제작된다고 한다. 미국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가 인기를 끌고, 표절 시비 속에서도 ‘외과의사 봉달희’ 또한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 메디컬 드라마도 변화하고 있다. 헌신과 희생과 감동만이 아닌, 또 다른 재미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단 한 번이라도 가지 않을 수 없는 병원이니 이만한 보물창고도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