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과학칼럼

‘또 다른 천재’를 기다리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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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인간의 뇌는 왜 머리 속에 있을까? 머리가 신체의 한쪽에 위치하다 보니 뇌에서 나오는 모든 신경정보는 중추신경을 통해야 한다. 뇌가 머리 속에 있지 않고 신체의 중앙에 있으면 어떻게 발전했을까? 그러면 신경정보망이 사방으로 퍼지게 발달해 중추신경에 의한 의존도가 달라졌을 것이다. 또한 뇌세포가 머리 한 곳에만 모여 있지 않고 신체 부위에 퍼져 있으면 어떻게 될까? 뇌는 왜 기억·계산·운동·감각·언어를 관장하는 부분으로 나뉘어 있을까? 그리고 이것들은 어떻게 상호 충돌하지 않고 협조하고 있을까? 패러다임을 바꾸니 생각이 자유로워진다.

1946년에 나온 최초의 컴퓨터 ENIAC은 할 일이 하드웨어 회로로 표현돼 있었다. 컴퓨터에 다른 일을 시키려면 전기회로를 바꿔 주어야 했다. 폰노이만은 이러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프로그램 내장형’이란 개념을 창안해 냈다. 즉 컴퓨터가 할 일을 스스로 소프트웨어의 형태로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다른 일 시키려면 전기회로를 바꾸지 않고 소프트웨어만 바꿔 주면 된다. 이런 명령어들이 모인 소프트웨어를 ‘프로그램’이라 부른다. 이처럼 동작하게 하려면 중앙처리장치(CPU) 옆에 기억장치(Memory)를 붙여주어야 한다. CPU가 실행할 명령을 기억장치에서 하나씩 읽어 와 계산하고, 그 결과를 다시 기억장치에 저장한다.

49년에 이런 ‘폰노이만 컴퓨터’ EDSAC이 완성된 후에 거의 모든 컴퓨터는 이런 구조를 따르게 되었다. 지금은 당연시되지만 그 당시에는 매우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기계가 시키는 명령어 하나만 실행하지 않고, 어떻게 순차적으로 할 일을 ‘스스로 기억’하고 있다가 작업을 한단 말인가? 폰노이만이란 천재의 힘으로 오늘날 컴퓨터의 모습이 완성되었고, 아직 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약점도 있다. CPU와 기억장치 사이의 정보 소통이 문제다. 이 통로에 병목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폰노이만 컴퓨터의 약점이 해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반도체 기술이 열어주고 있다. 기억장치를 만들어 주는 메모리 반도체의 기억용량이 기가(Giga) 수준으로 높아지고 가격도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정도로 떨어지고 있다. 또한 필요하다면 어떠한 회로도 아주 작은 칩에 압축해 넣을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어 있다. 따라서 CPU와 기억장치가 통합된 개념의 컴퓨터를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이 두 장치의 회로를 압축해 하나의 칩 속에 넣는 것이다. 이와 같이 통합되면 정보소통의 병목현상이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컴퓨터에 대한 또 하나의 불만은 인간이 시키는 일만 실행한다는 것이다. 컴퓨터의 성능이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아직도 스스로 생각해 일하지는 못한다. 이는 폰노이만 컴퓨터의 태생적 한계인지 모르겠다. ‘프로그램 내장형’이란 인간이 프로그램의 형태로 명령을 주면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가 실행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이 지시하지 않는 작업은 하지 않는다. 이런 한계를 벗어나려면 폰노이만 컴퓨터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이 주는 프로그램이 없어도 스스로 수행할 명령을 생성하게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뇌와 같이 CPU와 기억장치가 통합되면 어떻게 될까. 통합하되 인간의 뇌처럼 ‘계산’하는 부분과 ‘기억’하는 부분이 분리된 상태에서 상호 작용하게 하면 어떻게 될까.

변하는 상황에 맞게 ‘스스로 생각’하여 반응하는 컴퓨터, 그것은 차세대 컴퓨터와 로봇 연구자들의 꿈이다. 그러나 기존의 컴퓨터 개념으로는 어려울 것 같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자신이 할 일을 ‘스스로 기억’하는 컴퓨터는 60년 전 폰노이만에 의해 탄생하였다. ‘스스로 생각’하는 컴퓨터가 이 세상에 나오기 위해 지금 ‘또 다른 천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광형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미래산업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