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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豊참사 地下구조 자원봉사자 좌담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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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삼풍백화점 생존자 구조에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지하 「막장」을 뛰어다닌 민간 자원봉사자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자원봉사자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이 없는 속에서 이들이 보여준높은 인간애와 시민의식은 우리사회의 절망과 자괴감을 조금이나마위로해주기도 했다.
자원봉사캠페인을 벌여온 中央日報는 자원봉사자중 7명을 초청,치열했던 구조작업에 참여하면서 느꼈던 점등을 듣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편집자註] -처음에 어떻게 모이게 됐습니까.
朴=붕괴사고 직후 각자 집에서 뛰어나와 구조활동을 하던중 6월30일 오전1시30분쯤 A동 지하3층 직원식당에서 처음 얼굴을 맞댔습니다.이때는 소방관들도 교대를 위해 모두 철수했었습니다.그날 아침에 식사를 위해 다시 삼풍주유소에 모 였다가 『구조작업을 체계적으로 해보자』며 연장자인 저를 임시 구조대장으로세우고 역할을 나눴습니다.상자 골판지에 이름과 전화번호를적었는데 첫날 20명쯤이었다가 후에 50여명으로 늘었습니다.
-구조현장에서의 절실했던 체험담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高=삼풍백화점 5층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막 나오는 순간 백화점이 무너졌습니다.아찔하더군요.엘리베이터.중앙홀 외벽등 곳곳에 사람이 꽂혀서 『살려달라』고 외치는데 참으로 처참했습니다.정신없이 사람들을 끌어냈습니다.엘리베이터에 박힌 한 아주머니는 몇시간만에 숨졌는데 눈을 감아주어도 두번이나 다시 떠서 가슴이 미어지는 것같았습니다.
白=저는 삼풍백화점 납품회사 영업사원입니다.TV에서 랜턴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듣고 한박스 사들고 달려갔어요.내부구조를 잘알기 때문에 소방관들에게 안내하며 새로 길을 많이 뚫었습니다.
첫날 무너지지 않은 지하3층 구내식당과 무너진 주차장 사이에서화재가 발생했는데 소방대원들이 신속히 진화에 나서주지 않아 소방대를 설득해 소화전 호스를 1백여m 연결한뒤 다음날 오전6시까지 불을 껐습니다.지하의 불길과 연기를 보고 친하게 지내던 직원들의 모습이 떠올라 울면서 뛰어 다녔어요.
崔=건축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톱을 갖고 나갔습니다.도면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내부구조를 추정해 생존자 확인작업을 벌였습니다.
-구조작업이 힘들었던 만큼 보람도 느끼셨을텐데요.
高=A동 지하3층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환경미화원 24명의 인기척을 처음으로 감지한 것이 큰 보람입니다.오전8시쯤 물이 허리까지 차는 지하에 랜턴을 갖고 들어갔는데 『살려달라』는 희미한 소리가 들렸습니다.그래서 즉각 119구조대에 알렸습니다.
蘇=건축현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해머와 드릴등 힘드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이런게 바탕이 돼서 생존자들이 구조되는 것을 보고피로를 잊었습니다.지하에서 구출된 남자분은 『꼭 한턱 내겠다』고 했는데 건강이 회복됐는지 궁금하군요.
-당국의 구조작업에 불만스러웠던 점은 없었습니까.
朴=B동이 무너진다고 구조대원들을 몇번이나 철수시킨 것이 가장 불만스러웠습니다.본부에서 호루라기를 불고 차단시키면 작업을하다가 속수무책이 되었어요.
崔=구조본부에서는 측량기로 5~10㎜만 기울어지면 구조작업을중지시켰습니다.우리가 보기에는 콘크리트로 물려있어서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았어요.나중에는 철수하라고 해서 『죽어도 우리가 죽는 것이니까 당신들이나 나가라』고 하고 구조작업 을 계속했습니다.무모했는지도 모르지만 민간이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가능했겠지요. 蘇=해머작업등 힘들고 궂은 일을 할 때는 전혀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생존자의 몸이 나올 때는 갑자기 몰려오는게 싫었습니다.마치 공(功)다툼을 하는듯한 인상이었어요.또 구조를 하려면 우선 생존자 수색에 최우선을 둬야 하는데 당국에선 민간인들이 위험한 곳을 다니면서 신고한 뒤에야 움직이는 것같았습니다.구조작업도 획일적이고 관료적이었어요.
-민간자원봉사에 제도적 뒷받침이 안됐기 때문에 어려움도 많았을텐데요.
郭=장비를 지급받는 일이 제일 어려웠습니다.
등산 바위타기를 잘하기 때문에 로프 하나를 갖고 갔는데 그것은 필요가 없었어요.중앙엘리베이터에 끼어있는 여자분이 제손을 붙잡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데 장비는 해머와 톱밖에 없어 시간이 많이 흐르다 보니 결국 숨을 거두었습니다.
李=안전장비회사 「한국어프라이드 파워」에 근무하기 때문에 동료 10여명과 함께 장비를 대는 일을 맡았습니다.최대한 갖고 온다고 했지만 부족했어요.우수한 성능의 구조장비가 많이 나와있는데 정부에서 이를 구입하지 않았던게 큰 문제로 나타났습니다.
朴=그래도 적십자에서 무전사를 데리고 다니게 해주고 절단기등장비와 장갑등 물품을 대줘서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가족과 직장에서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郭=자녀들 교육을 위해 이번 자원봉사를 했습니다.사고당일 저녁을 먹던중에 뛰어나왔는데 말렸던 딸아이가 이틀후에 집에 잠깐들어갔더니 『아빠 그날 저녁 잡수셨어요』라고 겸연쩍게 묻는 모습이 아빠를 자랑스러워 하는 것같더군요.
高=4일만에 집에 들어갔더니 집사람이 『큰 일을 하셨다』며 술상까지 봐주더군요.TV에 나온 제모습을 봤다며 자랑스러웠다고말하더군요.대부분 가정에서는 호응이 컸습니다.
白=낮에는 일을 하고 퇴근후면 달려왔습니다.희생자 영혼들이 울부짖는 것같아 현장으로 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직장에서는 이해를 해주겠지만 자원봉사 때문에 회사를 쉬겠다는 말을 하기는어려웠습니다.
-여러분을 주축으로 「민간자원구조대」가 결성됐는데 운영계획은어떻습니까.
朴=1주일여간 함께 땀과 눈물을 흘린 인연이 소중해 모임을 가졌고 구조대를 결성했습니다.다시 이같은 재난이 발생해선 안되겠지만 만일 조그마한 사고라도 난다면 이번 경험을 토대로 다시모여 구조활동을 펴기로 했습니다.
-이번 구조활동을 펴면서 얻게 된 교훈이 무엇입니까.
李=대형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지침(매뉴얼)이 없어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정부에서 이번 경험을 토대로 대형사고에 대응하는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蘇=정부에서 민간자원봉사자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자원봉사자 관리기구의 설립등 민관협조체계의 확립이 시급합니다.
高=이번 자원봉사에 참여했던 분들이 석면.먼지등에 노출되었습니다.그런데 구조된 생존자에 비해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관심은 너무 빈약했어요.자원봉사구조자들도 당국의 도움으로 간단한 건강진단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진행.정리= 李榮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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