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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역사] 23. 인생 입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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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스위스대사 시절 정일영씨 가족.

우리는 그것을 봉래각(蓬來閣)사건으로 기억한다. 1948년 11월 29일이었던가. 정일영(鄭一永)이 결혼을 한다고 했다. 예과 동기로서는 가장 먼저였던 것 같다. 우리도 제대로 된 인생으로 접어든다는 첫 신호탄이었다. 야단이 났다. 식장이 덕수궁 석조전 옆에 있는 별동이다. 예과 동기들이 문자 그대로 구름떼처럼 몰려왔다. 주례는 중동중.고 교장을 하다가 서울대 총장이 된 최규동씨. 신부는 보성중.고 서원출(徐元出) 교장의 딸. 청강(晴江)이라는 이름이다. 일본말로는 '하루에'다. 결혼식은 성대하게 끝났는데 구름떼가 흩어지지를 않는다. 내가 그랬던가.

"저 어여쁜 신부와 어울린 정일영의 결혼을 그냥 세월에 흘려버릴 수야 있나. 1등차를 타고 태어난 인생이다. 한국에서 제일 가는 봉래각이 길 건너편에 있다. 저기를 향하여 모두 돌진!"

우와! 하고 몰려갔다. 봉래각 종업원들은 깜짝 놀랐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옵니까?"

"커다란 방 줘!"

커다란 홀이었다. 안다는 것이 탕수육.잡채. 술은 배갈을 주문했다.

쇠덩이도 녹일 수 있는 배를 가진 젊은이들이다.

"아 그거 그거…왜 있잖아. 허물허물한 거…그래 해삼탕! 해물탕도 가져 와!"

방 입구에 슬그머니 나타난 빨간색 빵떡모자를 쓴 중국인이 걱정스러워진 모양.

"이거 누가 돈 내해?"

"공짜로 먹고 달아날줄 알았어해?" 호통을 치니 슬그머니 사라졌다. 술이란 횡경막 속에 들어가면 들끓는 습성을 가진 액체다. 노래에다 고함에다 두어시간 가다보니 못 이기는 몇 사람은 빠져나갔다. 벌렁 누어 코를 고는 친구도 늘어났다.

"돈 누가 내해? 시간 다 됐어해!" 빨간 빵떡모자가 또 나타났다. 이때 송기완(宋基完)은 약삭빠르게 신부집에 가 있었다. 신부의 아버지 徐교장은 호통을 쳤다. "봉래각이 뭐야? 학생들 주제에… 우리집으로 왔어야 될거 아냐? 돈 못줘!" 노기가 대단하시다.

빨간 빵떡모자는 덕수궁 옆의 파출소에 고발했다. 나하고 몇 사람이 갔다."우리는 서울대생이다. 돈 내면 될 것 아냐?"

마침내 봉래각에서 이틀밤을 신세졌던가. 송기완이 정일영의 형인 정해영(鄭海永)씨를 찾아갔다. 정해영씨는 당시 마세크탄 장사로 석탄왕이 돼 있었다. 남한의 기차는 모두 그것을 때면서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나더니 "그래? 먹은 값은 내야지" 선뜻 해결해 주었다. 구름떼는 흩어졌다.

서울시청은 지금도 옛날 그대로다. 그러나 봉래각은 허물어졌다. 그 자리를 지날 때면 추억 속의 이틀밤이 떠올라 미소를 머금곤 한다.

후일 정일영은 외무부 차관을 하다 스위스.프랑스대사를 역임하고 국민대 총장을 지냈다.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비 내리는 장충단공원'을 부르면 가수로 풀릴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래를 잘 불렀다. 정일영의 결혼으로 모두 '인생에는 결혼'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한운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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