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럼>景氣사이클의 下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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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과도한 것이 좋은 경우는 없다.생산요소,특히 노동과 기술의 제약 때문에 한국경제가 연간 7%를 넘어 성장하는 것은 과속이라고 나는 본다.한 10년동안 더도 덜도 말고 연간 성장률이 6%가 된다면 그 이상 좋을 수 없을 것이다.5% 에서 7% 사이의 안정된 좁은 성장속도 대역(帶域)이 바람직하다.
「고도성장」을 한국 경제가 이루어야 할 첫째 가는 목표로 삼아야 함에는 변함이 없다고 본다.반대로 「과도성장」은 범해서는안되는 실수 가운데 하나라고 정해 두어야 할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93년 이래 지속돼온 과열경기가 지금 식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발표했다.분기별 성장률이 2.4분기의 10.2%를 정점으로 3.4분기에는 9.5%,4.4분기에는7.9%로 차츰 낮아질 것으로 본 것이다.그래서 올해 연간 성장률은 9.3%가 될 것으로 보았다.현기증날만한 과도성장률이다.작년의 그것은 8.4%였다.
내년 성장률은 7.6%가 될 것으로 KDI는 전망하고 있다.
정부의「과격하지 않은」안정화 대책 덕분으로 급격한 경기 하강 없이 전반적인 경제사정이 안정국면으로 안착하게 될 것이라고 KDI는 낙관한다.이렇게만 된다면 적이나 좋을까.마 치 서커스의소녀가 아슬아슬한 공중 트래피즈를 무사히 끝내고 그야말로 사뿐히 땅으로 내려온 것을 보는 기분과 같을 것이다.
나는 이런 환상적인 행운은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본다.다시 말해 한국경제라는 이름의 비행기를 탑승하고 있는 모든 승객은 지금부터 비상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하기는 이번 삼풍백화점 건물 도괴에서 살아 나온 세 젊은이들처럼 가 장 좋은 자세란 평상시의 낙천적인 마음을 그대로 지닌채 장난감을 만지며 목마름과 배고픔을 견디는 것일는지도 모른다.그러나 최소한 공기가 드나들고 몸이 짓눌리지 않을 만한 안전 공간은 확보하고 있어야 생환이 가능하다는 점만은 틀림없다 ).
가장 큰 충격은 성장 속도 하락 수치 그 자체에서 올 것이다.본래 KDI는 이번 경기 사이클은 내년 상반기에나 그 정점에다다를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수치하락 가운데 가장 급격하고 맨먼저 온 것이 역시 설비투자다.설비투자성장률은 올 2.4분기의26.9%에서 4.4분기에는 20.1%로,내년에는 8.5%로 떨어질 것으로 KDI는 보았다.한해 사이에 설비투자 성장률이 3분의1도 못되는 수준으로 떨어지는데도 어떻게 연착륙이 가능할것이란 말인가.
이번 경기 하강에서 가장 큰 불안정 요인을 공급할 것으로 보이는 근원은 은행이다.태풍의 눈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실명제 예금 과세 여파로 어쩌면 수십조원에 달하는 예금이 은행을 떠나 직접금융 쪽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이렇게 되 었을 때 은행은 예금이 줄어드는 것 만큼 대출금을 회수하는 것이 불가능할것이다.이 기회에 직접금융 방식으로 자금원을 옮길 수 있는 기업은 우량 대기업만이다.은행이 대출여력이 모자라 시달리게 되면안그래도 사태난듯 부도율이 급증하고 있는 중소기업은 이 태풍의중심에 놓이고 만다.
세상 일이란 묘해서 실명제는 돈 있는 사람 세금 때리는 경제정의 실천이 그 취지였는데 중소기업이 더 큰 욕을 보게 되었다.경제는 물리나 생물현상에 가깝지 정의감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가 보다.
은행이 실명제를 회피할 수 있는 예금상품을 만들면 당국은 두눈 꾹 감고 한두 해 한시적으로나마 모른체 해두는 것도 꽤나 괜찮은 구조대책이 될 것이다.능력있는 회사로 하여금 주가가 떨어지는 회사의 주식을 증시 안팎에서 자유로이 사 서 부채와 경영권을 인수할 수 있도록 한 법의 시행을 최대한 앞당기는 것도은행의 짐을 덜어주는데 한몫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경제규제를 최대한 완화해 기업이 「뿔뿔이」 자기 살길을 국내외 시장 바닥에서 찾도록 해야 할 것이다.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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