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돈 선거와 전쟁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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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돈으로 표를 사려는 ‘돈 선거’가 18대 총선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돈 선거는 2000년 16대 총선과 2004년 17대 총선을 거치면서 거의 멸종한 줄 알았다. 이 칙칙하고 질긴 돈 선거가 이번에 다시 살아난 것이다. 돈 선거는 당을 가리지 않고 여러 얼굴로 나타나고 있다. 한나라당의 어떤 후보는 선거운동원에게 직접 돈다발을 건넸다. 무소속의 어떤 선거운동원은 수천만원의 현금을 유권자 명단과 함께 갖고 있다 적발됐다. 친박연대의 한 선거운동원은 유권자에게 돈을 주다가 현장에서 걸렸다. 돈봉투의 기본 단위는 20만원이고, 건네받는 사람의 중량감에 따라 50만원,100만원짜리도 있다고 한다. 경찰청은 어제까지 선거사범 1770명을 적발했는데 이 중 264명이 금품·향응 범죄라고 밝혔다.

18대 총선에서 돈 선거가 되살아난 것은 쟁점이 흐릿하고 전선이 갈라져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선거에 임하는 정치권의 총체적 무능 때문이다. 17대 총선은 ‘노무현 탄핵이 옳은가, 그른가’라는 쟁점이 뚜렷하게 살아 움직였다. 유권자는 이 단일 쟁점에 대한 판단만 하면 됐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선 ‘안정론이냐 견제론이냐’는 상투적 쟁점이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 대운하’를 야당에선 쟁점화하려 하지만 여당은 회피하고 있다. 여야 대결 외에 한나라당 대 박근혜+친박연대라는 대결구도가 난데없이 나타나 선거 전선이 헝클어져 있다. 쟁점과 전선이 없는 선거일수록 사람의 욕망을 자극하는 돈과 향응, 흑색선전이 횡행하는 법이다.

지역적으론 대도시보다 중소도시, 농촌이나 도농복합 선거구에서 돈 선거가 위세를 떨치고 있다. 감시의 손길이 상대적으로 적게 미치기 때문이다. 유권자 수가 적고 노령인구의 비중이 높아 과거 돈 선거의 단맛을 추억하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주범은 역시 돈 선거의 추억을 파고드는 비열한 후보들이다. 돈을 돌려야 조직이 돌아간다고 부추기는 선거 참모들, 후보에게 접근해 조직을 돈 받고 넘겨주겠다는 선거브로커들도 공동정범이다.

돈으로 뽑힌 국회의원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국회에서 더 비열한 활동을 하게 된다. 그 부담은 그를 선택한 유권자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선관위와 검찰, 경찰은 선거사범 가운데 특별히 돈 선거와 전쟁을 치른다는 자세로 남은 선거에 임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