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양철북"작가 귄터 그라스 신작"광야"서 전체주의 재경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2면

하인리히 뵐 사망이후 독일을 대표해온 『양철북』의 작가 귄터그라스(67)의 신작장편 『광야』(원제 Ein Weites Feld,영역본 A Wide Field)가 출간전부터 화제가 되고 있다.
괴테탄생 2백46주년이 되는 8월28일에 맞춰 독일 슈타이들출판사에서 출간될 예정인『광야』는 두달전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언론의 리뷰덕분에 벌써 예비베스트셀러로 주목을 끌고 있다.
7백84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광야』가 이처럼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은 그라스가 이 책을 통해 독일 사람들의 정신적 급소를 논쟁의 도마위에 올려 놓고 있기 때문.
그라스는 나치즘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담았던 데뷔작 『양철북』이후 지속적으로 독일민족의 정신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전체주의 성향을 경고하는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 왔다.
통일문제에 대해서도 그라스는 좌파조차도「1국가 통일」을 지지할만큼 민족주의의 기류가 강한 상황에서 연방제를 통해 동서간의교류를 확대한 다음 통일을 해야한다며 성급한 통합을 반대해 왔었다. 그라스는 뿐만아니라 통일직후 흥분된 분위기 속에서도 전체주의를 경계하는 작품 『무당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내는 한편 『아우슈비츠는 통합 독일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상징』이라는 폭탄발언을 하는등 자신의 일관된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이 사건으로그라스는 대부분의 독자들로부터 외면 당해야 했으며 기차역에서 한 젊은이로부터「매국노」라는 얘기를 듣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광야』는 그라스의 생각이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이 작품에서도 그라스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기류에따라 끊임없이 좌우되는 독일인의 성향을「배신」이라는 낱말속에 함축하고 있다.
『광야』에는 배신을 상징하는 인물로 19세기 소설가인 테오도어 폰타네를 모델로 한 폰티가 등장한다.
폰타네는 여러 주인을 모신 공직자로 시대상황에 따라 정치적 입장을 무수히 바꾼 인물이다.젊은 시절 1848년의 봉기에 가담할 정도로 진보주의자였던 그는 이후 반동진영으로 옮겼을 뿐만아니라 이전에 그가 몸담았던 조직을 상대로 스파 이 활동까지 한다.나이가 들면서 그는 다시 합리적인 보수주의자로 생각을 바꾸며 노년에는 다시 혁명적인 사고에 매료된다.
그라스는 『한 인간의 정신적 변화과정이 폰타네만큼 흥미로운 사람도 드물다』고 말한다.그라스는 폰타네의 분신인 폰티의 변신과정을 통해 역사적으로 계속돼온 독일 민족의 변신을 드러내고 있다. 그라스는 19세기에는 반동진영이 진보진영을 배신했고 히틀러시대에는 나치가 유대인과 자유주의자를 배신했으며 동독인은 또 다른 동독인을 배신했는데 통일 과정에서는 서독이 동독을 배신한 것이 19세기 이후 독일의 역사라는 메시지를 남긴 다.『광야』는 늙지만 죽지 않는 폰티가 1989년 서베를린의 한 맥도널드 햄버거점에서 우울하게 통일을 맞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되풀이 돼온 배신의 역사를 환기시킨다.
南再一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