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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의 추억’지우는 대한민국 머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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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가 경영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그 나라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

현대건설 CEO에서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CEO로 도약한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39일이 지났다. 곳곳에서 변화가 눈에 띈다. 이 대통령은 27년간 기업에 몸담았다. 15년간은 국내 최대 건설회사 CEO로 기업 경영을 책임졌다. 이런 경력은 그간의 ‘대통령상(像)’과 확연히 다른 새로운 유전자의 대통령으로 비친다.

그는 계보 정치와 거리가 멀다. 쿠데타 동지나 민주화 동지 같은 가신 그룹이 없다. 386 운동권 같은 강한 연대 조직도 없다. 대신 그는 CEO 출신 대통령답게 ‘일’과 ‘성과’로 승부하는 사람을 우대한다. 일을 잘하면 발탁하고, 성과가 없으면 탈락시킨다는 원칙이다. 미국 포브스 미디어그룹의 리치 칼가드 발행인은 칼럼에서 “(이명박 대통령 같은 사람이 있으면) 미국도 참 좋을 텐데…”라고 썼다.

◇일로 승부하라=기업 경영의 핵심은 성과다. 계획만 번지르르하고 이익을 못 내면 기업은 문을 닫아야 한다. CEO가 효율과 경쟁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다. CEO 출신 대통령의 이런 생각은 국가 경영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추상적 업무계획은 소용없으니 실천 가능한 ‘액션 플랜’을 세워라.”(2월 29일 청와대 비서관 회의)

기업이 이익을 내려면 시장을 철저히 분석하고 파고들 전략이 필요하다. 예전의 대통령들은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지시 사항’을 내렸다. 이 대통령은 지시보다는 구체적인 질문을 통해 ‘액션 플랜’을 구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최근 라면값이 100원 올랐다. 밀가루의 t당 가격은. 밀가루 대신 쌀가루를 보급하는 방법은 없나.”(2월 22일 국무위원 후보자 회의)

밀가루 값이 뛰면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왜 손 놓고 있느냐는 지적이다. 기업 같으면 가만히 있으면 죽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해결책을 찾았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한 것이다.

대통령이 이렇게 나오니 관료들이 책상에 앉아 물정 모르는 대책만 만들 수는 없다. 농림수산식품부 직원들은 쌀 상품을 만드는 방안을 찾기 위해 전국을 뒤진 끝에 전남 담양에서 싼값의 쌀케이크를 공급하는 강동오케잌을 찾았다.

쌀 빵은 밀가루 빵에 비해 세 배나 비싸지만, 쌀 케이크는 개당 9000원에 팔 수 있다. 밀가루 케이크(8000원)와 값이 엇비슷하다. 농림부 관계자는 “현장을 뛰니 답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성신여대 강석훈 교수는 “대통령은 CEO를 하면서 몸에 밴 이런 실용적인 접근법으로 나라를 효율과 성과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신호를 계속 주고 있다”고 말했다.

◇고객을 모시듯 국민을 섬겨라=고객 위에 군림하는 기업은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그동안 국가 경영은 달랐다.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관료가 월급을 주는 국민 위에 군림했다. 이 대통령은 CEO 시절 공무원의 농간으로 대형 공사를 뺏긴 적도 있었다. 공직을 봉사하는 자리로 바꿔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공직자는 머슴이다. 머슴이 주인보다 늦게 일어나선 안 된다. 경제가 나빠져도 여러분들은 감원이 되나, 봉급이 안 나올 걱정이 있나.”(3월 10일 기획재정부 업무보고)

물론 과거 대통령들도 관료조직을 손보겠다고 나섰지만 저항에 밀려 용두사미에 그쳤다. 오랫동안 특권을 누린 공무원의 의식구조를 확 바꾸는 작업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는 정권 초부터 관료 개혁을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작은 정부’ 취지와 달리 각 부처가 편법으로 특별(TF)팀을 만들어 관료를 구제하자 이 대통령은 “떨어져 나간 사람에게 무슨 자리냐”며 호통을 쳤다. 그제야 각 부처는 모든 TF를 없애 3400여 명의 자리를 줄였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CEO가 온정주의에 빠져 조직을 관리하면 기업이 망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국가 경영도 마찬가지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정과 기업경영은 다른 점도 있다=기업경영 방식이 국정에 다 맞는 것은 아니다. 인사가 특히 그렇다. CEO는 이익을 내는 데 적합한 인재를 찾으면 된다. 국정은 다르다. 공직자는 국민이 인정하는 덕목을 두루 갖춰야 한다.

동국대 박명호 교수는 “일부 장관 후보가 물의를 빚고 좌초한 것은 국민의 뜻을 제대로 읽지 못한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과를 중시하다 보니 “앞만 보고 달린다. 시시콜콜 간섭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취임 한 달여 만에 벌써 피로 증후군이 나타난다는 볼멘소리다.

일본 혼다 제국을 건설한 혼다 소이치로 회장의 말은 그래서 울림이 크다. “속이 빈 대나무가 높이 자랄 수 있는 것은 마디가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돌이켜보며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김종윤·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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