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새 세계 152→6위 … 산탄데르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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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태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은 지난달 31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우리는 지난해부터 스페인 산탄데르 은행을 주목해 왔다”고 밝혔다.

산탄데르 은행에 대한 언급은 이게 처음이 아니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지난달 28일 열린 조직개편 선포식에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산탄데르에서 찾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가 주목하고, 하나금융이 배우려고 기를 쓰는 은행. 이유는 이 은행의 놀라운 성장 속도와 해외 진출 전략이다.

산탄데르 은행은 1857년 스페인 북부의 작은 항구도시인 산탄데르에서 무역금융 전문은행으로 출발했다. 1985년까지만 해도 자산기준으로 세계 152위, 스페인 6위에 불과한 ‘그렇고 그런’ 은행이었다. 그러나 90년대 초 에밀리오 보틴이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산탄데르는 새 역사를 썼다. 전문경영인인 보틴 회장은 국내 바네스토 은행을 인수해 산탄데르를 스페인 1위로 올려놨다. 또 스페인 국내는 물론 중남미에 지점이 많았던 국내 센트럴히스파노 은행(BCH)을 인수하면서 중남미 시장에 확고한 영역을 구축했다.

BCH를 인수할 당시 보틴 최고경영자는 “유럽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선 국내 시장에서 먼저 최고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략은 제대로 들어맞았다. BCH 인수 후 산탄데르는 국내는 물론 중남미 사업에서도 확실한 패권을 차지하게 된다. 이후 중남미 사업이 안정 궤도에 오르자 산탄데르는 영국·독일 등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산탄데르의 자산은 지난해 말 현재 9129억 유로(약 1300조원), 세계 8위 은행으로 급부상했다. 국내 5대 시중은행의 자산(900억원)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금융위가 특히 주목한 것은 산탄데르의 해외사업 전략이다. 스페인어를 쓰는 데다 문화적 동질성이 강한 중남미 시장을 산탄데르는 집중 공략했다. 게다가 투자은행(IB)과 같은 상대적 약점이 있는 분야보다 수익의 80%를 내는 소매금융을 주무기로 삼았다. 본사가 직접 해외로 나서기보다는 성장성 있는 회사를 골라 이른 시간 내에 인수합병(M&A)을 시도한 것도 성장의 열쇠였다.

임 사무처장은 “국내 은행의 해외 진출에 산탄데르의 사례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며 “특히 국내 은행은 아시아적 동질성이 강한 베트남·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를 집중 공략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나금융도 산탄데르 배우기에 열심이다. 김승유 회장이 직접 산탄데르를 벤치마킹할 것을 지시했고, 지난해 9월엔 보틴 회장을 국내로 초청해 장시간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신임 김정태 하나은행장은 2월부터 산탄테르에서 5주간 과외수업을 받기도 했다. 김 행장은 “산탄테르의 성장은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지난해 네덜란드의 ABN암로 인수전에 참여해 이 회사의 브라질·이탈리아 법인을 거둬들였다. 자신들의 강점이 있는 부문에 집중한다는 전략에 따른 것이다.

김 행장은 “브라질·이탈리아 법인의 합병 작업이 끝나면 산탄데르의 자산 규모는 세계 6위 이상이 될 것”이라며 “머잖아 세계 1등도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김준현·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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