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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바루기] ‘오륀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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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프레스 후렌들리’하게 하겠다 했더니 모든 신문·방송에 ‘프레스 프렌들리’ 이렇게 써놨거든요. (미국에서) ‘오렌지’ 달라고 했더니 아무도 못 알아들어요. 그래서 ‘오륀지’ 이러니까 ‘아, 오륀지’ 이러면서 가져오더라고요.”

얼마 전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이 공청회에서 한 말이다. ‘프렌들리’는 ‘후렌들리’로, ‘오렌지’는 ‘오륀지’로 써야 한다는 뜻이다. 영어몰입교육에 이어 나온 이 말은 ‘오륀지’라는 냉소적 유행어를 낳았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을 수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외국에서 영어 좀 배웠다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바로 이것이다. 외국어는 현지 발음을 그대로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연한 얘기 같지만 이는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현지음은 듣는 사람마다 다르고 지역마다 다르기 때문에 표기의 통일성을 기하기 어렵다는 데 문제가 있다.

당장 ‘오렌지’만 해도 현지음에 대한 인식이 ‘오륀지’ ‘어륀지’ ‘오뢴지’ ‘어뢴지’ 등으로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다. 이는 통일된 표기가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외래어 표기법이 존재하는 것이다. 통일성을 기하기 위해 우리말 체계에 맞게 합리적으로 정해 놓은 것이 외래어 표기법이다.

최대한 현지음에 가깝게 적지만 때로는 현지음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오렌지’의 경우는 특히 외국에서 들어온 말로 이미 우리말처럼 쓰이는 단어다. 무턱대고 ‘오륀지’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만이나 무지의 소치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이라면 ‘카메라’도 ‘캐머러’로 바꿔야 한다.

배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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