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할리우드 스타 출동 … 캐스팅만 2년 걸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영화 데뷔작에 할리우드 스타를 캐스팅한 이지호<左> 감독과 배우이자 부인인 김민씨. [사진=김형수 기자]

재미동포 이지호 감독(35)이 미국에서 만든 장편 데뷔작 ‘내가 숨쉬는 공기’의 개봉(9일)을 앞두고 한국을 찾았다. 사기경마로 일확천금을 꿈꾸다 극한의 위기에 몰리는 회사원(포레스트 휘태커), 미래를 보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폭력배(브랜든 프레이저), 폭력조직에 휘둘리는 유명가수(사라 미셀 겔러), 사랑하는 여자를 구할 기회를 맞게 된 의사(케빈 베이컨) 등 네 사람의 이야기를 연결한 독특한 영화다.

만듦새는 둘째로 치더라도, 캐스팅이 단연 눈에 띈다. 신인감독의 저예산 영화인데도 앤디 가르시아·줄리 델피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주요배역이다. 직접 쓴 시나리오로 할리우드에 데뷔한 이 감독을 만났다.

-‘행복’ ‘기쁨’ ‘슬픈’‘사랑’ 등 소제목이 붙은 네 이야기가 하나로 연결되는 구성이 독특하다.

“캐릭터 저널(인물에 대해 메모하는 수첩인 듯)에 아이디어가 생기면 적어 내려가다 한 순간에 퍼즐을 맞추듯이 머리 속에 전체 이야기가 들어왔다. 어떻게 연결할까 고민하는데, 어머니가 말씀해주신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도움이 됐다. ‘애’(哀)를 ‘애’(愛)로 바꾸기는 했지만.”

-캐스팅이 화려하다. 과정이 만만치 않았겠다.

“너무 고생했다. 캐스팅에만 2년 넘게 걸렸다. 투자사와도 많이 싸웠다. 서로 원하는 배우가 달라서. 알려진 대로 제작비가 작은 영화다. 점진적인 과정이었다. 케빈 베이컨·앤디 가르시아·줄리 델피 등이 모두 감독을 겸하는 배우들이다. (만날 때) 상세하게 준비하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 특히 앤디 가르시아는 신인감독과 일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다. 대본을 좋게 본 덕분에 한번 만날 기회가 주어졌다. 선글라스를 끼고 시가 연기를 뿜어대는 그의 앞에서 4시간에 걸쳐 콘티·음악·제작동기 등을 설명했다. 너무 힘든 과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신인감독에게 조언을 한다면, 주인공이 여러 명인 영화는 절대 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배우들과 만날 기회를 만들기도 어려웠을 텐데.

“대본에 편지를 곁들여 보냈다.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를 담아 솔직하게 썼다. 내 단편영화, 뮤직비디오 등도 첨부했다. 와타나베 켄에게 보내는 일본어 편지는 10차례나 번역을 거듭했다. 그랬더니 편지를 받자마자 전화를 걸어왔다. 스케줄이 서로 안 맞아 출연은 못했지만. 아주아주 어려운 과정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영화제작은 정말 협업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이지호 감독은 미국에서 나고 자랐다. 이민사의 초창기에 증조할아버지가 유학생으로 미국에 건너간 재미교포 4세다. 웨슬리안 대학에서 영화를 복수전공했고, 영화 실무는 뉴욕에서 편집기사로 출발했다. 불안정한 영화일을 걱정하는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한 ‘보험’으로 경영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 삼성영상사업단의 클래식음반 기획자로 2년쯤, 다시 2000년대 초 뮤직비디오·CF감독으로 3년쯤 일한 경험이 있다. 그의 부모는 20여 년 전부터 한국에 돌아와 살고 있다. 2년 전 결혼한 배우 김민씨는 인터뷰 내내 남편의 곁을 지켰다. 촬영장에서도 헌신적인 조력자였던 모양이다.

“마지막 촬영분량 30%를 남기고 대상포진에 걸렸다. 아내가 휠체어를 구해와서 매일 나를 촬영장에 데려갔다. (증세가 심해져) 열흘 동안 아예 시력을 잃기도 했다. 화면을 못 보고, 사운드만 들으면서 컷을 했다. (촬영을 중단하면 영화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모든 스태프가 자기 영화라는 생각으로 도와줬다. 처음에 그렇게 어렵게 굴었던 앤디 가르시아가 ‘지호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면, 우리 모두 떨어지는 것’이라며 격려해준 게 고마웠다.”

-차기작은. 한국에서 찍을 생각이 있나.

“그게 내 꿈이다. 우리나라 감독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박찬욱·홍상수 같은 분들의 발자취를 따르고 싶다. 물론 나는 이제 막 시작한 감독일 뿐이지만. 한국에 있으면 정열과 창의력이 느껴진다. LA에서는 사람이 멍해진다(웃음).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셋인데, 둘은 한국·미국·일본 등의 합작이고, 하나는 미국영화다. 모두 액션장르다. 좋은 작품이 있으면 한국에서 찍고 싶다.”

이후남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