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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칼럼>관철동시대 42.제2회 應昌期盃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0면

우승상금으로 미화 40만달러가 걸린 세계최대의 대회는 이바람에 시작전부터 밀사가 오가는등 난항을 거듭했으나 70 노구의 대만재벌 잉창치는 끝내 신념을 꺾지 않았다.
대회직전 중국의 江9단과 芮9단은 도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미국과 일본을 떠돌며 3년여동안 대회참가를 거부당했던 이들에게잉창치배 참가는 축복이자 재생의 기회였다.냉수만을 떠놓은 결혼식은 이리하여 비장한 출정식과 같았다.
13일의 1회전에서 대회의 복병으로 꼽힌 유창혁과 일본의 요다(依田紀基)9단이 먼저 승리를 낚았다.서봉수도 정밍황(鄭銘煌)9단을 꺾었고 홍일점 芮9단도 일본의 신진고수 고마쓰(小松英樹)8단을 꺾었다.이틀후 2회전부터 대회는 이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믿었던 이창호가「여자」인 芮9단에게 졌다.충격이었다.
세계챔피언을 꺾은 芮9단에게「중국의 마녀」란 별호가 붙었다.여자는 안된다던 바둑계에 사이렌을 울리며 다가온 芮9단은 진정 마녀였다.
1회대회때 우승해 한국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조훈현도일본의 아와지(淡路修三)9단에게 꺾였다.유창혁은 조치훈의 한칼에 쓰러졌다.대신 양재호가 미국챔피언 레드먼드 7단에 이어 芮9단의 남편 江9단을 꺾고 8강에 올랐다.뒤를 이어 서봉수가 조훈현의 스승인 후지사와 슈코(藤澤秀行)9단을 누르고 8강에 합류했다.린하이펑을 이긴 요다9단,그리고 오타케와 다케미야로 8강의 얼굴이 결정됐다.
한국진영은 초상집이 됐다.믿었던 간판들은 전멸했고 부진의 늪을 헤매는 서봉수와 뒷심 약한 양재호만 남았으니 우승은 일찍부터 틀린 일이었다.이 두 사람으로 저 즐비한 고수들의 숲을 돌파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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