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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잡동사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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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 25면

백과사전, 원소 주기율표, 도로의 교통표지판, 바코드. 이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얼핏 보면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지만 이들은 정보와 지식을 갈래 지어 우리가 쉬 이해하게 돕는 장치들의 예다.

김성희 기자의 뒤적뒤적

생각해 보면 우리는 거의 모든 것을 나누고 체계화한다. 어찌 보면 교육은 다양한 분류의 기준을 익히고 적용하는 과정이다. 아니, 지식 자체가 갈래 짓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지식경제’라든가 ‘정보가 곧 돈’이란 말이 설득력을 갖는 현대에서는 ‘정리’를 위한 책이 곧잘 베스트셀러가 되는지 모른다. 몇 년 전에 바람을 일으켰던 『메모의 기술』(해바라기)이나 『단순하게 살아라』(김영사) 같은 것이 그런 예다.

이 책, 『혁명적으로 지식을 체계화하라』(데이비드 와인버거 지음, 이현주 옮김, 살림비즈)도 그런 실용서인 줄 알았다. ‘복잡성과 혼돈의 시대를 뛰어넘는, 지식 분류의 패러다임 시프트’란 거창한 부제가 붙어 있긴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메모의 기술 정도를 소개하는 책으로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문화사이기도 하고 철학적 내용도 있으며 웹 2.0 시대 경영인에게 도움이 될 내용도 담긴, 뭐라 규정하기 힘든 책이었다.

18세기 프랑스에서 디드로 등이 엮은 ‘백과사전’이 처음 나왔을 때 알파벳순으로 정리된 책을 두고 당대의 신학자들은 신의 질서를 천하게 만들었다고 비난을 퍼부었단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가나다순 사전 편찬 방식도 수많은 논란 끝에 자리 잡은 ‘기술’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디지털 시대의 대표적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는 어떨까. 태그를 이용하고, 누구나 ‘편집’에 참여하는 이 열린 백과사전도 화살을 비켜갈 수 없다. 이번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측이 공격자다. 편집부장을 지낸 로버트 맥헨리는 “위키피디아를 방문하는 사용자는 공중화장실을 사용하는 사람과 처지가 같다. 더러울 게 분명하기 때문에 아주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얻는 것은, 혹은 얻어야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인터넷 시대에 정보를 가공해 부가가치를 더하는 메타비즈니스가 번성할 것이란 경제 전망도 아니다.

세계적 골퍼 타이거 우즈가 ‘캐블리네이시언(Cablinasian)’이라 자처했다는 구절이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 말은 우즈가 직접 만든 것으로 코카서스인·흑인·인디언·아시아인의 혼혈을 뜻한단다. 미국 인구조사에서 아시아계 인디언은 1970년까지 백인으로 분류되었고 히스패닉계 역시 그해에 겨우 독립된 인종으로 인정받았단다. 지금은? 미국 센서스에서 120개의 인종이 표시된다나.

사람은, 그리고 세상은 하나의 기준으로만 나뉘지도 않고 그나마 분류 기준도 갈수록 흐릿해진다. 그렇게 되는 것이 마땅하고 그 편이 더 효율적이란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그래서인지 책의 원제가 ‘모든 것이 잡동사니다(Everything Is Miscellaneous)’이다. 그러니 이 진지한 책에서 ‘~계’니 ‘비주류’니 하는 요즘 정치판 타령이 그야말로 부질없는 짓이란 깨달음을 얻은 것이 책을 제대로 읽은 건지도 모른다.


고려대 언론학 초빙교수이자 중앙일보 출판팀장을 거친 ‘책벌레’ 김성희 기자가 격주에 한 번 책읽기의 길라잡이로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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