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열며>우리 이제부터라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크고 화려해 보이던 삼풍백화점이 폭삭 무너져 내렸다.너무 충격적인 대형사고가 잇따라 일어나고 있어 우리 국민 모두의 정서가 불안할 지경이다.
잘 다독거려 간수한 화롯불의 불씨로 밥솥에 불을 지피고,아침마다 아궁이의 재를 알뜰히 긁어모아 농사지을 거름을 장만하고,기름이 닳을까봐 호롱불의 심지를 낮춘 가난했던 시절을 50대이상의 어른세대들은 어젯일처럼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부모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라도 자녀 교육에 희생적인열성을 바쳐 국가의 고급 인력이 축적되었고,온국민이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열사(熱砂)의 나라 중동의 건설현장까지 나가 집념어린 근면과 노력으로 우리는 일찍이 상상도 해보 지 못했던 오늘날의 풍요로운 모습으로 살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씨 뿌리고 부지런히 가꿔야만 풍요로운 수확을기대할 수 있었던 농경시대의 그 소박한 순리를 잊어버린 것 같다.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의 잇속만 챙길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염치도 불고하게 되었다.그래서 돈을 벌 수만 있다면 양심을 쉽게 팔고 순리(順理)와 정도(正道)가 아니어도개의치 않는 풍조가 생겼다.욕심 때문에 우리들은 어느덧 임시와,눈가림과,적당히 해치우는데 익숙해져 버렸다.그「임시」와 「눈가림」과 「적당히」했던 일들의 업 보(業報)는 끊이지 않는 대형사고의 참사로 우리를 벌주고 있다.
대형사고가 날 때마다 「이번에도 인재였다」는 말이 꼭꼭 따라붙고 있다.어떤 사고도 우연히 일어난 것이 없고 운이 나빠서 일어난 것들이 아니다.모든 사고는 이미 잉태돼 있다가 때가 되면 터질 뿐이다.삼풍백화점도 건물의 부실시공과 안 전관리 소홀이라는 주원인이 1천수백여명의 사상자를 낸 대형참사를 부른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도시산업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제각기 다만 자기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어느 것 하나도다른 사람과 깊이 연관돼 있지 않은 일이 없다.내가 하는 일이곧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재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나의 실수와 무책임이 곧 우리사회의 대형사고를 만들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도시산업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 공동체는 마치 한사람의 인체와도 같아 어느 분야에서든지 맡은바 자기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 그것이 원인이 돼 누군 가가 큰 피해를 보게되고,사회전체가 충격의 몸살을 앓게 된다.
임시로 해둔 것이 영구할 수 없고,남의 눈을 가린 것은 결국드러나게 마련이며,적당히 했던 일들은 「부실이란 무서운 얼굴」로 나타나고 만다.그리고 원칙에 따르지 않고 안이하게 했던 일들은 쉽게 허물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충격으로 경 험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원칙을 지키고 순리를 따르는 겸허한 자세로살아야 겠다.우리 모두 자기가 맡은 일만큼은「작은 하자(瑕疵)」라도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하게,책임있게 일하는 자세만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 미래의 대형 사고를 예방하고 있는 것이다. 붕괴된 삼풍백화점의 경우 이미 15일전부터 건물 일부에 금이 가는등 붕괴의 조짐이 나타났다고 한다.사고 당일 아침에도5층 식당 바닥에 균열이 생겨 백화점 임원들은 긴급대책회의를 하고 4층 보석상점의 귀금속은 미리 치웠다.그러면서 도 인명피해 대책은 세우지 않고 5층의 큰 백화점이 폭삭 내려앉을 때까지 영업을 계속했다니 우리사회가 물질에 비해 얼마나 인명을 경시하고 있는가.
이제부터라도 물질과 돈보다 사람을 존중하는 올바른 가치관이 정립돼야만 우리의 미래를 밝게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삼풍백화점 참사로 목숨을 잃은 선량한 시민들의 명복을 삼가 빌며 부상자들의 빠른 쾌유 있으시길 기원한다.
〈원불교 강남교당 교무〉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