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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키운 지 28년 … 지금 가장 힘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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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경북 청도에서 양돈업을 하는 이병규씨가 돼지들에게 사료를 주고 있다. 최근 급등한 사료 값 때문에 출하할수록 적자를 보고 있다며 표정이 어둡다. [사진=황선윤 기자]

26일 오전 경북 청도군 각남면의 한 양돈농가. 돈사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두컴컴한 우리 속에 새끼 돼지들이 가득하다. 통로 옆에 설치된 사료통을 들여다보던 농장주 이병규(52)씨의 표정이 어둡다.

“사료가 왜 이래 빨리 없어지노….” 중얼거리던 이씨는 “사료 값이 올라도 너무 올라 어떻게 견뎌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숨지었다.

2000여 마리의 돼지를 키우는 그는 2006년까지만 해도 대금을 미리 내고 배합사료를 공급받을 정도로 사정이 좋았다. 하지만 올 들어서는 선납은커녕 외상 거래로 간신히 버티고 있다.

산지 돼지 가격은 오르지 않은 채 사료 값만 급등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마리당 2만원, 올해는 3만~4만원씩 적자를 보고 있을 정도. 매월 280~300마리(마리당 110~115㎏)씩 출하하면 할수록 적자는 늘어난다. 마리당 4만~5만원씩 남기던 2005년과는 딴판이다.

육성 돼지용 사료 값은 2007년부터 여섯 차례에 걸쳐 45%나 올랐다. 경북 지역 평균 사료 값은 2006년 말 ㎏당 367원에서 지금은 531원으로 뛰었다. 사료 값은 생산회사와 농장 신용도, 지역별로 차이가 많은 편이다.

지난 1년을 그럭저럭 버틴 이씨는 적자 폭이 커진 올 들어 어쩔 수 없이 외상 거래로 전환했다.

그는 내일모레면 밀린 사료 대금 6400만원을 지급해야 하지만, 현재 준비한 돈은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사료 값이 올해 두 차례는 더 인상될 것이란 소식에 이씨는 걱정이 태산이다. 그는 “양돈업 28년 만에 올해가 가장 힘들다”며 침통해했다.

인근 풍각면에서 돼지 5000마리를 키우는 박종우(50)씨의 사정은 더 어렵다. 지난해 가을부터 늘어난 외상 사료 값이 1억3000만원에 이른다.

그는 “사료 대금을 갚으려면 돈을 빌려야 하지만 더 이상 담보로 잡힐 재산이 없어 은행 돈을 빌리기 어렵다”며 “돼지 값이 오르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시설 및 경영개선자금 21억원을 빌려 쓰고 있는 상황이다.

인근의 한 돼지농가 주인은 “이런 추세라면 웬만한 농가는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도산하거나 폐업해야 할 판”이라고 침울해했다. 그는 “야반도주하는 농가가 생기고 있지만 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전했다.

위기에 몰린 양돈농가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직원을 줄이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 달에 수백만원씩 드는 분뇨처리비를 아끼기 위해 분뇨를 원료로 쓰는 액체비료 생산시설을 늘리는 곳도 증가하고 있으나 이 또한 시설비 부담이 만만찮다. 사료회사도 폐업·도산으로 대금을 받지 못할 것을 우려해 현금 지급을 요구하는 바람에 농가의 시름은 더 깊어졌다. 정부는 사료 구매자금 1조원을 긴급 대출키로 하고 시·군을 통해 농가에 배분하고 있으나 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황선윤 기자

◇사료 값 왜 올랐나=옥수수·대두·소맥 등 배합사료의 원료인 국제 곡물 가격이 2006년 이후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기상 악화에 의한 곡물 생산량 감소, 바이오에너지의 원료가 되는 곡물 수요 증가, 원유가 급등에 다른 해상 운임 증가, 중국·러시아 등 곡물 수출국의 수출 규제 강화 등이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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