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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머니게임>10.끝 퇴행하는 동경 금융시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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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전염병처럼 국제금융가를 휩쓸고 있는 디리버티브(파생금융상품)의 물결.그 흐름을 주도하기 위한 금융기관 사이의 경쟁은 날이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첨단금융상품 디자이너인 소시에테 제너럴은행의 피오나 윌슨은『이제 금융기관의 우열은 단순한 여.수신규모가 아니라 신상품 개발능력으로 판가름나게 됐다』고 말한다.
바로 여기에 도쿄(東京)의 고민이 있다.일본의 금융기관들이 세계 금융시장의 전주(錢主)로 자처하면서도 파생상품에서 미국 금융기관에 맥을 못추고 있는 상황이다.노무라종합연구소의 나카무라 미노루(中村實)부장은 그 이유를『인센티브제가 정착 안된 점과 규제일변도의 정부정책 탓』이라고 지적한다.
미국이 세계 파생상품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것은「월街의 로켓 과학자」로 불리는 금융공학자들 덕분이다.대부분 물리학이나 수학혹은 수리통계학.공학등을 전공한 이들은 80년대 후반 우주개발계획이 축소되면서 강단.연구소를 떠나 대거 월街 로 진출했다.
로켓탄도를 연구하던 이들이 월街에 데뷔할 수 있었던 것은 디리버티브 개발에 고도의 수학지식이 필요했기 때문.매사추세츠 공대(MIT)교수였던 피셔 블랙과 스탠퍼드大 교수출신의 마일론 숄즈가 대표적 인물이다.
월街가 이들을 끌어올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능력에 걸맞은대우」를 보장했기 때문.잘 나가는 금융공학자들 중에는 연봉이 1천만달러를 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도쿄 스위스유니온은행의 디리버티브 전문가 케니 리는『일본이 첨단 금융상품의 개발과 운영에서 뒤지고 있는 것은 파이낸셜 엔지니어들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면서『파격적인 대우로 이들을 영입하지 않을 경우 미국과의 격차를 좁히기 어려울 것 』이라고 말한다. 세계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도쿄의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또다른 원인으로는 정부의 낡은 규제가 꼽힌다.지난해 일본의 한 도시은행이 신종 주식스왑을 개발,장외시장에서 판매했다가대장성으로부터 혼쭐이 났다.증권거래법 201조에 저촉 될 소지가 많다는 것이 이유였다.정부와 금융계가 한참 입씨름을 벌이고있는 사이에 이 시장은 몽땅 외국계 은행들의 손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신상품 개발이 이처럼 억제되는 상황에서 일본 금융기관들이 어떻게 세계 금융시장을 주도해 나갈 수 있겠느냐』는 노무라증권의 우에다 만지(上田万二)주식부장의 반문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디리버티브가 이미 국제금융의 본류(本流)가 됐는데도 아직 우리에겐 생소하게 다가온다.때로는 파생상품을 무슨 괴물처럼 대하며 슬슬 피하기까지 한다.지난 4월부터 여의도에 주가지수선물 모의시장이 개설됐고,내년부터는 실제 거래가 이루어 지는 데도 별다른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정도로 서울의 토양은 척박하기만 하다.
『한국은 반도체분야에서 이미 세계 정상에 올랐지만「금융반도체」인 디리버티브분야에선 이제 걸음마를 배우고 있다.도쿄 금융시장의 퇴행하는 모습이 우리에게 새로운 자극제가 돼야 한다』고 도쿄 스위스유니온은행의 톱딜러 최민수(崔敏秀)씨는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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