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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프리즘] ‘중화의 문’ 들어서길 거부하는 티베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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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티베트 승려들이 22일 윈난성의 둥주링이라는 한 수도원 문 앞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중국 당국의 신속한 진압으로 라싸를 비롯한 티베트인 거주지는 평시 상태를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윈난 AP=연합뉴스]

중국의 땅에서 돌궐과 흉노, 선비와 거란족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창장(長江) 남부를 선점했던 수많은 갈래의 비에트(越)족은 모두 어디로 떠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은 모두 지금 중국의 주류인 한족(漢族)에 섞여 있다. 북에서 내려와 중원 지역을 석권했던 사나운 북방 유목족, 쌀농사를 기반으로 풍부한 재화를 생산했던 남방의 수많은 비에트족 모두 한족이라는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 지금의 중국인을 형성하고 있다.

한족은 이처럼 혈연과 역사·문화·이데올로기가 한데 섞인 존재다. 핏줄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한자(漢字) 사용을 근간으로 하는 문화적 공동체다. 황허(黃河) 문명을 만든 이른바 ‘용(龍)의 후손(傳人)’이라면서, 한족을 마치 단일 혈통으로 설명하는 요즘 일부 중국인의 논리는 허영과 무지 내지는 정치적 과장에 불과하다.

한족의 개념은 이렇게 복잡하다. 그래서 한족은 내부적 위기가 닥칠 경우 쉽게 쪼개질 수 있는 느슨한 집합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중국을 통치했던 역대 왕조는 통합의 메커니즘을 극도로 중시했다. 이른바 ‘대일통(大一統)’ 개념이다. 좀 더 잘 알려진 예를 들자면 중국 왕조가 추구했던 이상세계는 세상을 고르게 한다는 ‘평천하(平天下)’이자 모두가 어울리는 ‘대동(大同)’이다. 다양한 갈래를 아우르기 위한 통합의 이데올로기다.

중국 공산당은 요즈음 왕조의 전통을 계승해 ‘중화(中華)’라는 개념으로 통합을 추구하고 있다. 역사에 등장했던 수많은 민족이 한데 섞인 한족의 개념에 55개 소수민족을 덧붙여 중화민족이라는 간판을 걸었다. 분열적인 요소를 한데 묶자는 의도다.

최근의 티베트 사태는 이런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다. 중앙을 다스리고 있는 복합적 개념의 한족이 중화라는 테두리를 설정해 고원의 티베트인들을 끌어들이려고 하면서 벌어진 갈등이다.

티베트는 돌궐과 흉노, 선비와 거란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중원에 침입해 이 지역의 종주권을 노리기보다는 해발 4000m 이상의 고원에서 불교와 함께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살아왔다.

현대사에 들어서도 티베트는 한동안 베이징(北京) 정부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1911년 신해혁명 이후 50년까지 티베트는 명백한 독립 상태는 아니지만 강대국의 영향에서 떨어져 있었다. 그러다 1950년 10월 인민해방군에 의해 점령당하면서 본격적으로 중국의 테두리에 들어섰다. 그러나 청(淸)왕조가 완전한 복속이 아닌 견제와 통제 위주의 느슨한 방식으로 티베트를 묶었다면 현재의 중국 공산당은 좀 더 강한 국가주의로 티베트를 끌어들이고 있다. 물론 ‘중화민족’이라는 통합의 이데올로기를 동원해서다.

티베트를 정신적으로 이끄는 달라이 라마 등 지도자급 인사들은 중화민족의 문 안으로 들어서기를 거부한다.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이냐, 자치냐를 두고 내부에서 갈등을 보이지만 이들이 순순히 중국을 따를 것 같지는 않다.

문제는 중국 내 대부분의 소수민족이 실질적으로 한족에 동화됐거나 그 과정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티베트 또한 2006년 개통된 칭짱(靑藏) 철도에 의해 급격한 동화의 위기에 놓였다. 티베트인들을 자극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이런 우려다.

대만과 신장(新疆) 위구르 자치구, 많은 소수민족 지역 등 분열적 요소를 많이 간직해 통합을 내세울 수밖에 없는 중국으로서는 티베트의 분리가 지금의 판도를 깰 수 있는 도화선이다. 그래서 대응 자체가 매우 민감하다.

그렇지만 중국은 고원에 남아있는 비한족 개념의 고상한 티베트 문화를 보호해야 한다. 통합만을 내세우다 작지만 소중한 것을 없애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 경우 중국은 ‘탐욕스러운 대국’의 인상을 피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는 티베트가 중국의 일부라는 점을 받아들이고, 중국은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하는 수준에서 하루 빨리 타협해야 한다.

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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