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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대신 손을 내밀어 아르빌에 희망 심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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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 18면

아르빌에 파병된 자이툰 부대원(오른쪽에서 둘째)이 부대 내 기술교육센터에서 현지 젊은이들에게 에어컨 설비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중앙포토

19일 경기도 광주 특전사 교육단 연병장에서는 이라크 주둔 자이툰 부대에 파견될 장병을 위한 환송식이 열렸다. 8진 1차 교대 장병 212명이다. 김상기(육사 32기) 특전사령관 주관으로 열린 행사에는 장병과 가족 등 1200여 명이 참석했다.
파병 장병들은 올 2월 특전사 교육단에 입교해 자이툰 부대가 주둔 중인 이라크 아르빌 지역의 언어·문화·관습 등을 익혔다. 장병들은 가전제품 수리, 자동차·발전기·컴퓨터 정비, 중장비·특수차량 운전, 제빵 기술 교육도 받았다. 현지 주민들에게 전수하기 위해서였다.

자이툰 부대 파병이 남긴 것

‘자이툰 부대는 신이 내린 선물’
자이툰 부대의 아르빌 파병은 숱한 곡절을 겪었지만 임무 수행은 매우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연세대 문정인 교수는 “자이툰 부대의 민사작전은 세계적인 모범 사례”라며 “미국·영국·일본 등은 평화유지활동에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한국군은 간 곳마다 성공했다”고 말했다. 민사작전은 군 부대가 일반 주민들을 상대로 벌이는 치안·구호·재건 등의 활동이다.

자이툰 부대는 2004년 9월 22일 이라크의 평화·재건 임무를 띠고 쿠르드 자치구역인 아르빌 지역에 전개했다.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를 의미하는 자이툰은 약 3년6개월 동안 현지 분위기를 확 바꿔 놓았다. 파병 당시 목표는 아르빌 지역의 치안을 확보한 뒤 평화와 재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아르빌 경찰과 정보기관이 효과적인 업무를 수행토록 하고, 경찰 등 치안요원을 양성하는 게 급선무였다. 자이툰 부대는 이를 위해 경찰시설을 현대식으로 개선하고 차량과 컴퓨터 등 물자를 제공했다.

부대원들은 눈높이를 철저하게 현지 주민에 맞췄다. 접근 방식이 다국적군에 편성된 다른 나라 군대와는 전혀 달랐다. 현지 아이들을 꼭 껴안아 주고 주민들과 손잡는 자이툰 부대의 지역 밀착형 민사작전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다국적군에 속한 다른 파병국은 군화를 신은 채 종교시설에 들어가 수색하고 과자를 던져 주는 바람에 비난을 받기도 했다. 자이툰 부대는 이런 친화적인 활동을 통해 전통적으로 외국군을 싫어하는 이라크 주민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신이 내린 선물’로 불릴 정도였다.

자이툰 부대는 전염병의 원인이 돼 온 오염된 웅덩이를 메워 축구를 할 수 있는 운동장으로 만들었다. 하수구를 설치해 보건 환경을 개선했다. 학교와 보건소, 마을회관, 발전시설 등 265개 시설도 신축했다. 마을 단위로 자립할 수 있도록 20개 지역에 ‘새마을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특히 자이툰 기술교육센터는 쿠르드 자치구역의 경제 발전과 기술인력 양성의 기폭제가 됐다. 자이툰 부대 안에 마련된 이 센터에는 컴퓨터, 차량, 가전제품 수리, 제빵 등 7개 과정이 운영되고 있다. 현재까지 1300여 명이 배출됐다. 태권도 교실, 문맹 퇴치를 위한 쿠르드어 교실 등도 인기다. 자이툰 병원은 7만여 명의 주민을 치료했다.

자이툰 부대의 활동 성과는 미군에도 영향을 미쳤다. 도널드 럼즈펠드 전 미 국방장관은 2006년 1월 이라크 주둔 미군 지휘관들과의 화상 대화에서 “자이툰부대 같은 (민사)작전을 펼치라”고 지시했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서 이기고도 전후 처리에 실패한 원인이 민사작전에 있다고 보고 자이툰 부대를 본받으라는 것이었다.

한국 기업 진출의 기반
자이툰 부대의 성공적인 임무 수행은 한국 기업이 아르빌 현지에 진출하는 기반이 됐다. 지난해 3월 한국을 방문한 이라크 아르빌의 나우자드 하디 주지사는 자이툰 부대의 파병 연장을 요청하면서 “아르빌주 정부는 건설, 유전 개발 등에서 한국 기업에 우선권을 줄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한국 기업은 쿠르드 지역의 석유 채굴권을 얻는 등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석유공사 등 4개 업체가 쿠르드의 4개 광구 개발에 참여키로 했다. 쿠르드 지역은 이라크 석유 매장량(1120억 배럴)의 30∼40%(350억∼500억 배럴)를 차지한다. 또 현대건설 등 국내 13개 업체가 쿠르드 자치정부와 고속도로·수력댐 건설 등 23조원 규모의 재건사업에 참여하는 양해각서를 지난해 7월 체결했다.

올 2월 서울을 방문한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 니제르반 바르자니 총리는 “파병국의 기업을 우선 고려하는 것은 당연하며 전쟁의 폐허에서 재건에 성공한 한국의 경험을 배우고자 한다”고 말했다.

올해 말 철수
자이툰 부대는 올해 말까지 완전 철수할 계획이다. 국회는 지난해 자이툰 부대의 철수를 결의했다. 이라크 파병은 처음부터 역풍에 시달렸다. 2003년 9월 미국이 파병을 요청한 이후 정부가 파병지를 아르빌로 확정하는 데만 9개월이 걸렸다. 파병 결정 과정에서는 국론이 분열되기도 했다.

병력 규모는 파병기간이 연장되면서 3600명에서 3200명(2005년 6월))→2200명(2006년 12월)→650명(2007년 12월)으로 줄어들었다. 정부는 이런 후유증을 없애고 안정적인 국제 공헌을 위해 유엔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평화유지활동(PKO)군을 보낼 방침이다. 이를 위해 제주도에 평화유지활동센터(POC)를 만들어 유엔 PKO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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