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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뒷골목으로 달아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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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결승 3번기 2국>
○·박영훈 9단 ●·이세돌 9단

제7보(78∼88)=뽕밭이 푸른 바다가 되더니 다시 뽕밭으로 변하려 한다. 이세돌 9단은 전보의 마지막 수인 흑▲를 통해 전쟁의 나팔소리를 사방에 울리고 있다. 비참하게 유린당한 우변에서 흑의 폐석들이 슬금슬금 일어서더니 드디어 반격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 모든 죄는 백△ 두 점에 있다. 현찰은 귀중한 것이지만 종종 비극의 씨앗이 된다.

이 급속한 변화에 충격을 받은 것일까. 박영훈 9단의 82가 다시 궤도를 벗어났다. 박영훈도 ‘참고도1’이 옳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이 뒤의 행마가 잘 떠오르지 않아(백A면 흑B가 싫다) 82로 실마리를 구한 것인데 이세돌 9단이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83, 85로 달려가자 흑 모양이 갑자기 환해졌다. 대신 떵떵거리던 백은 86까지 뒷골목으로 달아나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고난의 행군 끝에 흑은 영광을 맛보고 있다. 그러나 이날은 참 신기한 날. 이세돌 9단의 87이 다시 구경꾼들을 경악하게 한다. 수많은 강자가 ‘참고도2’의 흑1을 기정사실로 여기며 “흑 우세”를 단언할 때 이세돌은 갑자기 몸을 움츠렸다(백2의 침입은 3으로 공격, 설사 살려줘도 흑이 좋다고 한다). 천하의 요소인 88이 백의 수중에 떨어지며 국면은 다시 어지러워졌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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