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無紛糾 합의와 정치투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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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현대중공업이 노조설립이후 8년만에 처음으로 무분규 임금협상을마쳤다.해마다 5,6월이면 노동현장에 어김없이 검은 구름을 몰고 왔던 현대중공업이 평화로운 노사협상을 마쳤다는 사실 자체가우리 노동운동사에 기념비적 한 페이지로 기록될 큰 사건이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 어째서 이처럼 떠들썩한 「사건」으로 부각되는가.근로조건과 노동환경등 노동 내부의 문제가 협상의 주제여야 하는데,밤낮 우리의 노동현장은 노동외적인 정치투쟁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대화와 양보가 협상의 방식이어야 하는데도 대결과 극한투쟁이 노동운동의 주류라는 관성이 지난 10년간 계속되었기 때문이다.노사간 협상이 아니라 노학연대,민주노총결성등 제3의 정치노선이 작용함에 따라 노사 당사자간의 협상이 아니라 체제와 반체제,보수와 혁신이라는 노동 외적인 대결 구도로 치달았다.이 과정에서 사실상 피해를 보는 쪽은 근로자였고,이득을 보는 것은 노동정치꾼이었다.여기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무분규 서명운동이었고,그 결실이 현중(現重)의 무분규 임금협상 타결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노동현장을 일탈한 노동정치꾼들의 작태는 사라지지 않았다.6.27 4대 지방선거를 볼모로 일제파업이라는 비상체제를 작동하고 있는 세력이 아직도 노동현장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현실이다.협상의 결말도 보지 않은채 19~24일 무조건 쟁의돌입을 선언한게 과연 민주적 노동운동인지 묻지 않을수 없다.
지하철과 병원은 노사간의 이해만 있는 보통직장이 아닌 공익사업장이다.공익을 외면한 사익(私益)다툼에 빠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정부의 중재회부와 노동위원회의 중재라는 법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그런데도 이런 법적 장치를 무시한채 불법 파업을 독려하고 분신근로자를 앞세워 대규모 추모대회를 준비중이다.이게 과연 민주노조가 갈 길인가.노사불이(勞使不二)나 무분규 서명운동의 확산은 지난날 정치투쟁에 더 이상 근로자가 희생될 수 없다는 반성의 확인이다.정치투쟁은 싫다는 근로자들의 의지표명을 노동정치꾼들도 이제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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