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문화의 바다’ 통영이 진화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남망산 조각공원에 설치된 일본 조각가 이토 다카미치의 작품 ‘4개의 움직이는 풍경’ 너머로 통영항이 보인다. 이 공원에는 모터로 움직이는 질 두야르(프랑스)의 ‘잃어버린 조화’, 투명 비닐줄 사이를 다닐 수 있는 헤수스 라파엘 소토(베네수엘라)의 ‘통과 가능한 입방체’ 등 국내외 작품 15개가 전시돼 있다. [사진=송봉근 기자]

남해안 한려수도를 품고 있는 ‘멸치의 고장’ 경남 통영은 인구 13만 여 명의 소도시다. 1990년대 말까지 전국에서 소비되는 멸치의 4분의 1∼3분의 1가량이 이곳에서 나왔다. 굴은 60%, 우렁쉥이는 25∼30%를 차지했다. 당시 어류 운반 차량들이 도로에 흘리는 바닷물 때문에 골치를 앓을 정도였다. 국제적인 작곡가 윤이상(1917~1995년) 선생은 26년간 독일에서 사실상 망명 생활을 하면서 ‘통영 멸치’라는 말만 들으면 고향(통영)을 그리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만큼 ‘수산 도시’의 이미지가 각인된 지역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이 소도시에 464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이 중 많은 사람이 음악·문학·미술이 어우러진 문화를 즐기기 위해 찾았다. 문화가 통영의 풍경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20일 오후, 통영 시내는 ‘통영국제음악제’ 봄 시즌을 알리는 펼침막으로 뒤덮였다. 이 행사는 윤이상 선생의 실내교향곡 제2번 ‘자유’(Freiheit)를 주제로 열린다. 21일 오후 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 영국 BBC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로 막이 오른다. 정치인과 유명인사들이 참여하는 거창한 개막식도 없이 조용히 시작되지만 대부분 입장권은 이미 지난달 설(2월 7일) 무렵 매진됐다. 일부 인기 공연은 표를 구하지 못한 애호가들이 수백 명씩 대기자로 등록해 놓고 있다.

봄 시즌에는 윤이상 선생의 작품뿐 아니라 클래식·현대음악·재즈에 이르기까지 14개 본 공연팀과 프린지(fringe·공식 초청 받지 못한 작은 단체들의 공연) 103개 팀 1300명이 통영시민문화회관과 항구 주변인 강구안 문화마당, 해저터널(통영~미륵도 461m 구간), 페스티벌하우스 등 통영 시내 곳곳에서 연주를 펼친다. 통영시는 26일 폐막 때까지 1주일 동안 10만여 명의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통영시 인구의 약 70%에 이르는 수치다.

통영 경제에서 수산업 비중은 줄어드는 대신 통영문화를 즐기려는 관광객 수는 늘고 있다. 통영 시내 수협 위판고는 2005년 518억원이었으나 지난해 473억원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관광객 수는 362만 명에서 464만 명으로 28% 증가했다. 강구안에서 식당을 하는 김철호(40)씨는 “3, 4년 전만 해도 선원들이 많았으나 요즘은 외지 관광객들이 갈수록 늘어 수산도시의 옛모습이 사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통영시 김상영 문화예술과장은 “음악제와 함께 경남국제음악콩쿠르, 통영예술제, 한산대첩축제 등이 활성화되면 2010년께 관광수입이 수산업을 앞지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화 도시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도시 모습도 변모하고 있다. 도심 간판과 도로시설에는 공공디자인 개념을 도입했다. 윤이상 선생을 기리는 음표를 넣은 보도블록을 깔고, 가드레일도 5선지에 음표를 그려 넣었다. 기존의 전혁림미술관·청마문학관에 이어 음악당·문화타운이 조성될 예정이다. 올해 안에 480억원의 예산을 확보해 1500석 규모의 윤이상 음악당(도남동)을 착공한다. 설계는 미국 LA 월트디즈니 콘서트홀을 설계한 세계적 건축가 프랑크 게리에게 맡기기로 했다. 소설가 박경리, 시인 유치환과 김춘수, 극작가 유치진을 비롯해 통영이 낳은 문화예술인 20여 명을 기리는 기념관과 테마파크도 짓기로 했다.

진의장 통영시장은 “21세기는 문화가 지역의 경쟁력이자 경제력”이라며 “한려수도를 끼고 있는 통영을 지중해 연안 도시처럼 아름다운 남해안의 문화도시로 가꾸겠다”고 말했다. 
글=통영=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통영국제음악제=윤이상 선생을 기리기 위해 2000년 시작됐다. 2002년 통영국제음악제로 이름을 바꾸고 규모도 키워 세계적인 수준의 음악제로 발돋움했다. 독일의 도나우에싱겐 현대음악제를 모델로 했다. 통영이란 지명은 조선시대 선조 37년(1604년) 설치됐던 삼도수군통제영에서 따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