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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Leisure] 거문도는 꽃빛 쪽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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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해를 지나, 이어 섬진강을 거슬러온 봄이 내륙으로 퍼지고 있다. 봄의 북상 속도는 얼마나 될까. 개나리와 진달래의 경우 하루 30㎞를 올라온다 하는데…. 바다의 봄은 어떨까. 육지보다는 훨씬 빠르겠지. 춘곤증에 걸린 양 엉뚱한 생각에 빠져 있다가 전남 여수에서 거문도행 배를 탔다.

남도의 바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전남 신안.진도.완도.고흥.여수) 중 최남단인 거문도(여수시 삼산면). 여수에서 남으로 114㎞, 제주에서 북으로 108㎞ 거리에 있는 섬. 100여년 전 '포트 해밀턴'(Port Hamilton)이라는 이름으로 서구에 알려졌던 곳. 거문도 등대 아래에는 유채꽃과 수선화가 활짝 피었고, 섬 곳곳의 동백은 붉은 한숨을 마지막으로 토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꽃보다 아름다운, 봄기운 가득한 쪽빛 바다가 눈에 잡혔다.

거문도=글.사진 성시윤 기자

*** Yellow - 쏟아지는 햇살 흐드러진 유채

▶ 이 꽃 따서 아내 머리에 꽂아줄까. 꽃반지 만들어 예쁜 딸에게 끼워줄까. 혼자 보기엔 너무 아까워. 남쪽 끝 등대 가는 길에 핀 유채꽃.

거문도(巨文島)는 서도(西島).고도(古島).동도(東島) 등 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옛적에는 삼도(三島)라 불렸다.

여객선이 승객을 풀어놓는 곳은 서도와 동도 사이에 있는 고도다. 서도와 고도는 1992년 다리로 연결됐으니 이제 거문도는 2개의 섬이라고 보아도 좋다. 거문도에 발을 들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리고 가장 먼저 가는 곳은 서도 남쪽 끝의 거문도 등대다.

거문도에는 1800명이 살지만, 택시는 단 두 대. 버스는 없다. 그러니 트레킹 삼아 걷자. 선착장에서 등대까지는 다녀오는데 3 ~ 4시간이 걸린다. 선착장에서 출발해 다리를 건너 서도의 유림해수욕장까지 간 뒤 해수욕장에서 산쪽으로 올라가 신선봉 방향으로 산을 탄다. 산길 초입에서 만난 무덤가에는 야생 수선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노란 꽃술이 강렬한 수선화. 문득 '무덤 임자는 참 복도 많다'는 생각이 든다.

까마득하게 바다가 보이는 능선을 따라 신선봉을 거쳐 당도한 거문도 등대. 등대 아래에 노란 유채꽃이 따뜻한 봄볕을 쬐고 있다. 등대지기들이 키우는 것으로 짐작되는 새끼 흑염소와 강아지. 줄에 묶여 있는 흑염소는 꽃대 사이로 몸을 숨기고, 강아지는 되려 튀어나온다. 거문도에서 가장 강렬한 봄빛깔은 수선화와 유채의 노란빛이었다.

*** 여행 쪽지

여수항 여객터미널(061-663-0117)에서 거문도까지 하루 4회 운항. 편도 1시간 50분 소요.

*** Red - 물 손님 반기는 동백

1905년에 세워졌다는 거문도 등대 주변은 동백나무 천지다.

거문도 동백은 10월 말부터 3월 말까지 쉼없이 핀다. 같은 나무에 달린 것이라도 동백꽃은 제각각이다. 이미 피어 떨어진 놈, 활짝 만발한 놈, 그리고 언제 필지 모르는 놈들이 뒤섞여 있다. 이게 동백의 매력이다. 피는 시기가 다른 것도, 지는 이유가 다른 것도 다 동백의 맘이다.

거문도 출신 소설가 한창훈(41)은 그래서 거문도 동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바람에 홀로 진다. 동박새 부리질에 진다. 아이들의 거친 손장난에 진다. 새 근무지 찾아 들어오는 등대장의 발등에서 진다. 사랑하여 비상을 꿈꾸는 연인들의 머리 속에 이별의 예언처럼 진다. …. 술 취해 돌아오는 늙은 어부의 주정 사이로 진다. …. 그러니까 그 꽃은 세월의 모진 바람 앞에서 진다.'

한씨가 쓴 산문소설 '바다도 가끔은 섬의 그림자를 들여다 본다'(실천문학사.99)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소설을 읽고 가면 거문도가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솔직히 거문도 등대 주변의 동백은 상태가 예년 같지는 않다. 지난해 태풍 매미 피해로 동백나무 잔가지들이 무수히 부러져 나갔기 때문이다. 등대 오르는 길에는 막 떨어진 듯한 동백꽃이 고운 자태 그대로 누워 있다. 혹여 무심코 밟지 않도록 조심하시라.

*** 여행 쪽지

거문도 선착장을 벗어나면 등대까지 가는 도중에 식수를 구하기 어렵다. 선착장에서 물을 준비해 가는 게 좋다.

*** Blue - 시리도록 푸른 해밀턴 항구

거문도의 볼거리가 그저 흐드러진 유채꽃이나 동백만은 아니다. 거문도의 봄빛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로 봄기운 머금은 바다 물빛이다.

선착장에서 서도로 넘어가 산길 능선 위에서 바라보는 거문도의 내해(內海). 서도.고도.동도에 둘러싸인 100여만평의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하다. 쪽빛, 남색(藍色), 옥색(玉色)….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물색은 그저 '푸르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러시아의 남하에 대비하던 영국 함대는 이런 잔잔한 내해가 있기에 이곳 거문도에 주둔했던 것이다. 당시 영국 함대 제독의 이름을 따 거문도는 서구에 해밀턴항(港)으로 알려졌다.

거문도 선착장에서 백도행 유람선을 타고 바다를 달린다. 거문도에서 동쪽으로 28㎞ 거리에 있는 백도(白島)는 39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무인도다.

섬 중의 섬, 명승지 중의 명승지다. 편도 20~30여분의 뱃길. 백도가 보이기 전부터 탑승객들이 선실을 나와 갑판에서 동쪽을 바라본다. 조물주가 빚은 듯한 39개의 기암괴석이 떠 있는 그곳에 거문도의 푸른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바다 깊숙이 봄이 담겨 있어서다.

*** 여행 쪽지

백도행 유람선은 비정기적으로 운행한다. 일정 숫자의 승객이 모여야 배를 띄운다. 백도행 유람선 운행 여부와 거문도 여행 상품 정보는 거문도관광여행사(061-665-4477) (www.geomundo.co.kr)에서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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