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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판 종목에 길이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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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외국인이 판 종목에서 반전의 기회를 노려라.’

19일 반짝 매수에 나섰던 외국인들이 하루 만에 순매도로 돌아섰다. 20일 유가증권 시장에서 외국인은 878억원을 순매도했다. 이 때문에 외국인 매도 공세의 표적이 된 종목 주가는 맥을 못 췄다. 그러나 외국인이 판 물량의 상당수가 보유 주식이 아니라 빌려 판 주식이어서 주가가 반등할 때는 이들 종목이 반전을 주도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주가가 반등하면 외국인이 빌려 판 주식을 갚기 위해 주식을 서둘러 사들일 공산이 커 다른 종목보다 주가 회복 속도도 빠를 것이란 얘기다.

◇계속 늘어난 대차 잔액=올 들어 외국인은 열흘을 제외하고는 매도로 일관해 왔다. 누적 매도액이 13조원을 넘는다. 매도가 늘면서 주식을 빌려 판 대차거래 잔액도 함께 급증했다. 지난해 연말 대차거래 잔액은 4억4000만 주, 금액으로는 23조원 수준이었다. 2월 들어 잠시 주춤하기는 했지만 이후 다시 늘어 19일에는 6억3700만 주(29조원)로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대차거래는 증권사나 증권금융으로부터 주식을 빌려 판 뒤, 나중에 시장에서 다시 매수해 갚는 거래다. 하락장에서 먼저 판 뒤 주가가 떨어질 때 사서 갚으면 이익을 낼 수 있는 투자 방식이다. 증권예탁결제원에 따르면 대차거래의 90%를 외국인 투자자가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외국인들이 빌려서 판 주식이 많았다는 의미다.

물론 늘어난 대차거래 잔액이 모두 증시 하락을 예견하고 먼저 판 단순 대차 물량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신증권 이승재 연구원은 “주가연계증권(ELS)이나 ‘롱숏 거래’ 등 새로운 상품과 투자기법이 나오면서 헤지 물량이 많아졌기 때문에 대차가 늘어난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주가 반등 땐 대차잔액 많은 종목 수혜=약세장에서 대차거래는 주가 하락폭을 키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팔자가 무한정 계속될 수는 없다. 기한이 지나면 빌린 주식을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증시가 상승 반전할 때 손실을 줄이기 위해 매수를 서둘러야 하는 부담이 있다. 이로 인해 주가가 오를 때는 상승폭을 키우는 효과가 있다.

실제 주가가 급반전할 무렵 대차거래 잔액이 갑자기 줄어드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 8월 급락한 주가가 반등할 때 대차거래 잔액은 10%가량 줄었다. 올 2월에도 비슷한 양상이 전개됐다. 증시 주변에서는 약세장에 베팅한 단순 대차 물량이 전체 잔액의 10%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 잔액으로 볼 때 약 3조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 같은 추세는 개별 종목에서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팔아놓은 종목에 대한 재매수 압력이 커져 돈이 집중적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2월 급반등했던 조선주가 대표적인 사례다. 하나대투증권 서동필 연구원은 “19일 외국인이 5000억원 넘게 순매수한 금액 중 조선주는 대차 물량을 회수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국투자증권 김학균 수석연구원은 “주가가 반등하기 시작하면 최근 급격하게 대차 잔액이 늘어난 종목의 상승폭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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