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질 금리 마이너스 시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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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의 중개인들이 잠시 일손을 멈추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하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대형 투자은행인 골드먼삭스·리먼브러더스의 1분기 실적이 예상만큼 나쁘지 않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이날 다우 지수는 3.51% 급등했다. [뉴욕 AP=연합뉴스]

미국이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로 들어섰다. 18일(현지시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기준금리 목표를 0.75%포인트 내린 2.25%로 조정했다. 2.25%는 미국의 2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4.3%)은 물론 원유가 등을 제외한 핵심 물가지수(2.5%)에도 못 미친다. 은행에 돈을 넣고 받는 이자가 물가 상승률에도 못 미치게 된 것이다.

FRB는 이날 일반 은행들에 돈을 빌려줄 때 받는 금리인 재할인율도 0.75%포인트 인하해 2.5%로 낮췄다. 금리 인하 소식과 함께 골드먼삭스·리먼브러더스가 예상보다 좋은 분기 실적을 내놓으면서 뉴욕 증시가 급등하는 등 금융시장은 다소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금리 인하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불거지기 시작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본격화된 지난해 9월 이후 FRB는 여섯 차례의 연속적인 금리 인하로 기준금리를 3%포인트나 끌어내렸다. 하지만 금리를 내려도 투자와 소비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신용상 거시경제실장은 “심각한 신용 경색으로 돈이 금융회사에 묶인 채 돌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연속적인 금리 인하로 달러 가치가 떨어지고 물가 불안도 커지고 있다.

이런 고민은 이날 FRB 성명에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FRB는 “경기 하강 위험이 여전하다”면서도 “물가가 상승하고 있어 상황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낮춰야 하지만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 금리를 낮출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FRB가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기 시작했으며, 금리 인하만으로 현 상황을 풀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는 방증”이라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FRB가 향후 금리 인하에서 부실 금융사에 직접 자금을 공급하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박사도 이날 금리 인하의 한계를 지적하고 나섰다.

그는 뉴질랜드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금리 인하는 금융 위기를 일으킨 근본 문제인 주택시장 침체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핵심 문제는 미국인 200만 명이 집 값 하락으로 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을 날리고, 그것이 금융시스템 전반을 위태롭게 할 것이란 사실”이라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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