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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열린 정치 시대의 서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지방자치선거 입후보자 등록이 시작되었다.
모두들 고장과 나라를 위해 일해 보겠다는 일념으로 큰 발을 내디뎠다.
이번 선거의 의미는 그러나 그저 지방의원과 자치단체장을 뽑는것만이 아니다.
선출직 정치엘리트의 숫자가 많이 늘어난다는 의미만 있는 것도아니다. 지역별로 유능한 정치엘리트가 포진(布陣)하면서 권력의다핵다축(多核多軸)화 현상으로 정치평준화가 이루어지는 한편 능동적인 시민들이 앞장서서 의회와 집행부를 간섭하며 스스로를 「시민의원」또는 「시민입법인」으로 자처하며 민주정치가 두 궤도 위를 달리게 될 것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그래서 이번 선거를 참여민주주의 시대의 본격 전개로 이해하는것이 좋겠고,열린 정치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팡파르라고 생각하면된다. 이런 시대의 변화속에서는 어떤 사람을 뽑는다는 것이 큰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누가 되어도 공약이나 정책이 그만그만하고 임기중 이루지 못할것이 더 많을 테니까 사람보다는 시대의 전환쪽에 눈을 돌려 이번 선거의 의미를 깊이 새기는 가운데 앞으로 이 나라 정치변화에 더 관심을 갖는 것이 좋을듯 싶다.
그 이유는 이렇다.
이번 선거의 특징은 말할 것도 없이 후보등록 전부터 언론이 그 열기를 부추겼다.
관훈클럽토론회.방송사특별회견.신문지상회견 등이 후보자들을 유권자 앞에 바짝 다가서게 했다.
특히 긴 시간동안 화면에 등장한 후보자들은 온갖 면모를 일반국민들에게 보였기에 그만큼 국민은 정치교육을 받은 셈이다.
나아가 이제부터는 저 정도가 아니면 정치엘리트로 입문하지 말아야겠다는 부수적 효과도 얻었다.
5共 청문회이후 모처럼 정치인을 가까이서 속속들이 보게 된 것인데 이러한 현상은 미국에서는 흔한 일로 전파미디어가 사람들의 사회적 행태나 분야별로는 특히 정치세계의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을 경험했다.
그러나 멀티미디어시대의 정치가 가져오는 또 다른 효과는 정치인이나 정당이 시민 개개인이나 시민단체와 다르지 않고 오히려 우리만 못하다는 인식이 팽배해 진다는 사실이다.
후보자의 면모만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전당대회나 국회의사당,그리고 청와대로 극히 한 단면이겠지만 우리는 화면을 통해 이미 들어가 보았다.
그런 가운데 하늘에서 불을 훔쳐 인류에게 준 프로메테우스를 이해하게 됐다.
입법권과 행정권이 독점하던 시대의 막을 서서히 내리며「열린 정치의 시대」에 본격적으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선거가 끝나면 이긴 정당,진 정당으로 나뉘어 기존 정치구도가흔들리면서 이념적으로 참여시민 정치시대가 열리고,공간적으로는 세방화(世方化)정치시대가 전개될 것이다.정계개편.정치구도의 큰변화가 뒤따르는 것은 필연이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이러한 구도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선거캠페인을 지켜보고 선거후 당선자만이 아니라 시대의 변환기에 서서 나 자신의 좌표를 가늠해 보면서 투표에 임할 일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선거 때만 되면 내용은 전혀 무관한데도 테네시 윌리엄스의 작품이 연상되면서『욕망이라는 이름의 선거』라는 엉뚱한 제목이 자꾸 뇌리에 떠오른다.
후보자와 운동원,그리고 정당인들이 인생의 한 단애(斷崖)에 서서 무질서의 화신이 된 여주인공 브랑스 같지는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욕망의 화신이 된 출마자들은 법과 규정의테두리 밖에서 욕구를 채우기에 급급하다.
그리고 더한 것은 치졸한 경쟁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갈라놓는다. 우리네 선거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약점은 크고 작은 조직에서 선거 한번 치르고 나면 반드시 나와 남을 확인하고 편이 갈리고 마음을 가른다는 것이다.
선거를 이렇게 치르고 나면 열린 시대의 정치고,시민의원이고 소용이 없다.
제발 이번 선거로 새로운 정치시대의 문고리를 틀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가 정치적으로 자립해 성숙한 시민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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