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와르르~펑~ 터지는 세상을 꿈꾼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와르르” “펑~!”

코카콜라 병 뚜껑이 열리고 캠벨 수프 깡통들이 솟구쳐 올라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다. 책들은 바닥으로 떨어지기 직전이고, 빨간 탁구채는 공을 튕길 듯 힘차게 스매싱한다.

22일까지 서울 청담동 ‘더 컬럼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토마스 엘러의 ‘THE Incident’전. 작가는 일상의 평범한 물건이 살아 숨쉬듯 생명력을 갖게 되는 ‘찰나’를 포착한다. 팝 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의 작품에는 평면을 뛰어 넘는 특유의 생명력이 존재한다. 워홀이 캠벨 수프 깡통으로 현대사회의 대량 생산ㆍ소비를 무덤덤하게 이야기했다면, 그의 수프 통은 살아있는 듯 숨을 쉰다.

작품이 전시 중인‘더 컬럼스’ 갤러리에서 만난 작가 엘러는 8:2로 빗어 넘긴 가르마, 단정한 옷차림이었지만 눈빛에는 익살 끼가 가득했다.

‘더 컬럼스’ 장동조 대표는 1998년 부산 비엔날레의 전신인 부산국제현대미술제(PICAF)에서 엘러를 처음 만난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바위 만한 사과와 거대한 과일들 아래 다소곳이 두 손을 모으고 서 있는 30㎝ 크기의 검은 양복을 입은 신사가 있어 그 유머에 ‘풋’하고 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만큼 엘러의 작품에는 소년의 장난기가 묻어있다.

뉴욕에서 활동 중인 작가에게 왜 하필 한국에 왔느냐고 묻자 그는 “내가 한국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한국이 나를 택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만큼 그는 요즘 가장 ‘핫(Hot)’한 인물로 떠오르고 있는 작가 중 하나다. 국내에는 2004년 광주 비엔날레에서 지하철 차량 외부에 거대한 달팽이를 표현한 작품으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사진을 수 백장씩 촬영한 뒤 현상해 알루미늄 판에 독특하게 붙이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이번에 선보인 19점의 작품도 뉴욕에서 작업한 7년의 연장선상에 있다. 앱솔루트 보드카, 코카 콜라 등 대중에게 익히 알려진 상품에 관객과 더 쉽게 소통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특징이다.

엘러는 물건의 작은 움직임을 주시한다. “맥주병이나 콜라병은 무심코 지나치는 물건이지만 고정 이미지를 깨면 독특한(unique) 물질로 변한다”고 말했다. 평범한 일상의 이미지를 파괴할 때 비로소 관객의 눈을 붙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작업할 때 그의 머리 속에는 온갖 수 백 개의 이미지가 가득 찬다. 그는“‘복서(Boxer)’를 표현할 때는 권투 하는 사람의 작은 동작을 하나 하나 다 예상하고 표현하기 위해 머리 속으로 미리 준비한다”고 말했다. 평균 200장 이상의 사진을 찍지만 10~15개 정도만 작품으로 태어난다. 팝아트의 대가 프랭크 스탤라의 영향을 받아 만들었다는 작품 ‘coca cola’의 경우 최대한 장식 미를 배제했다는 점에서 스탤라와 확연히 구별된다. 장식을 하기는커녕 콜라 병을 팩에 넣어서 망치로 부숴버렸다.

그가 추구하는 또 하나의 가치는 ‘아이러니’다. 코카콜라는 미국의 상징이지만 알고 보면 병은 죄다 멕시코산이다. 그는 “평범한 이미지 속에 숨어 있는 모순 또한 작품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엘러는 요즘 독일에 있는 한 대형 병원의 복도 디자인을 맡아 바쁘다. 약용 식물을 이용해 무려 250m에 달하는 복도를 모자이크 방식으로 하나하나 잘라 붙이는 방식이다. 광주비엔날레의 거대한 달팽이 지하철처럼 착시 효과를 이용해 멀리서 원래의 식물 이미지가 보이도록 했다.

앞으로 한국에서 활발하게 전시 활동을 하겠다는 그는 “전통적인 미술 가치를 좇기보다는 절대적이고 고정적인 관념을 깨부수는 작가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김진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