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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인버그가 본 朴壽根-가장 한국적인 현대화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우리네 보통사람들의 힘겨웠던 생활을 독특한 질감으로 표현해낸박수근(朴壽根)화백의 30주기 기념전이 20일까지 서울 갤러리현대((734)8215)에서 열리고 있다.朴화백은 50년대 후반 미국 여기자 마거릿 밀러등의 도움으로 국내보 다 오히려 외국에서 먼저 호평을 받았다.63년부터 68년까지 아시아재단 한국대표를 맡았고 미국으로 돌아가서는 조지타운大교수로 재직했던 데이비드 스타인버그(67)가 30여년만에 다시 아시아재단 대표로 한국에 왔다.그가 본 朴화백의 예 술세계를 알아본다.
[편집자註] 유작전이 열린 지난 65년 나는 박수근의 그림을첫대면했다.첫눈에 나는 화폭에 담긴 고요한 저력과 깊고 강력한감성에 매료됐다.30년전에 경험한 흥분을 확인하게 돼 즐겁고 다행스럽기만 하다.
박수근은 아마도 가장 한국적인 현대화가다.재료와 스타일은 서구에서 따왔지만 그만큼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 화가는 없을 것 같다.급변하는 사회.예술 환경속에서 朴화백은 세가지의 중요한 특질을 구현하고 있다.한국의 전통마을과 정직함에 대한 존경,우수(憂愁)에 대한 깊은 이해가 그것으로 주제.스타일 모두 그의그림에는 힘이 살아있다.
朴화백은 그를 둘러쌌던 가족과 이웃,그리고 마을풍경등을 대변한다.특히 그의 그림에는 건축적인 분위기가 넘쳐흐른다.힘찬 윤곽선은 끊어찍듯 한점 한점 붙인 붓놀림에 의해 강조되고 있으며갈색과 회색,연녹색과 황색을 섞은 색상도 화강암 의 느낌을 주면서 한국 가옥의 흙담을 연상시킨다.한국의상의 전통적인 색깔인흰색과도 미묘한 대조를 보인다.
朴화백의 그림은 가난과 순박함,그리고 고독이 주조를 이룬다.
색의 선택도 한국의 전통마을에 대한 공감을 나타내는 그의 주제를 부각시킨다.
특히 턱에 손을 대고 앉아있는 흰옷 차림의 임신부 그림은 건축적인 입체감을 잘 드러내고 있다.자연을 표현할 때도 그는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를 즐겨 그렸는데 이는 인물들의 함찬 모습과 절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는 아낙네.노인.아이.빨래하는 여인등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주요 모티브로 삼았다.이같은 일상성이 애호가들을 끌어들이고 있으며 이런 면에서 朴화백은 가난했지만 전통가치가 굳건하게 살아있던 한 시대를 대표하고 있다.
그의 그림에는 가식이나 작위적인 감상 대신 과감하고도 은은한힘이 깔려 있다.
한국 농촌의 소박하고 활기있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그렇다고 그는 이상향 같은 농촌으로 우리를 유혹하지 않으며 도리어우수와 고독이 지배하는 농촌의 현실에 직면하게 한다.심지어는 유쾌하게 뛰노는 농악의 그림에서도 어떤 억눌린듯 한 분위기가 배어 있다.
朴화백은 많은 예술가처럼 사후에 더 평가를 받았다.그의 인기는 최근 한국에 있어서의 예술가의 지위를 반영한다.
이는 한국사회의 소득향상에 따른 예술가 수용이 아니라 전통에대한 한국인들의 동경과 민족적 자각을 입증한다.
그렇지만 朴화백은 한국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뛰어넘어 인간의 보편적 조건을 탐구한 작가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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