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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영구’가 31세‘햄릿’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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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80년대 초 ‘간난이’라는 TV드라마가 있었다. 전쟁통에 부모 잃은 남매, 간난이와 영구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사람들을 TV 앞으로 불러모아 눈물을 쏙 뺐다. 드라마가 방영된 지 25년이 지났다. 담 너머 부잣집을 훔쳐보며 심통 부리던 영구, 김수용(사진)도 서른한 살 어른이 됐다. 까까머리 아역 스타는 뮤지컬 배우로 자라 ‘햄릿’의 주인공이 됐다. 열정적인 춤과 시원한 가창력으로 연기한 햄릿 역은 ‘김수용의 재발견’이라는 평가를 끌어냈다. 그는 지난해 공연된 시즌1에 이어 시즌 2에서도 주인공을 맡고 있다.

‘간난이’ 얘기부터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뮤지컬 배우로 자리매김 했지만 아역의 꼬리표를 떼기가 쉽지는 않았을 터였다.

“너무 어렸을 때라 ‘간난이’는 기억도 별로 없고 실감이 안 나요. 폭발적이었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거죠. 어머니가 ‘여기선 이렇게 하고, 저기선 우는 거야’ 하시면 그대로 따라 하기만 했죠.”

초등학생 시절 내내 방송국·집·학교를 맴돌다 실컷 놀고 싶어 중학교 3년 쉰 것을 빼고는 계속 연기를 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대학도 동국대 연극영화과로 들어갔다. 꾸준하게 연기를 했다는데도 영구만큼 인상적인 건 떠오르질 않았다.

“아르바이트처럼 여기저기 단역으로 출연했고, 오디션도 많이 떨어졌어요. 방송국을 찾아가도 ‘많이 컸네’ 라고만 하시더라고요.(웃음)”

실망했을 법도 한데 그는 어른들 틈에서 일 하면서 ‘애늙은이’가 된 덕에 “다행스럽게도 자신을 잘 알았다”고 했다.

“고등학생이 되니까 ‘나를 선뜻 써주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역 출신이니 신선하지도 않은데, 키가 훤칠하지도 잘생기지도 않았잖아요. 경쟁력이 없다는 걸 잘 알았던 거에요. 그런데 어려서 한 것만으로 연기하겠다면 건방진 거죠.”

아역 때 연기는 큰 경험으로 여기고 학교와 대학로 연극 무대 등에서 배움의 시간을 가졌다. 그러던 중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다.

“2002년에 ‘풋루즈’가 첫 공연이었어요. 뮤지컬이 너무 하고 싶을 때 운 좋게 오디션을 봤고, 주인공이 됐고, 데뷔를 한 거죠. ”

운이 따랐을 뿐이라지만 그는 그동안 열 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했고 ‘렌트’의 에이즈 환자, ‘뱃보이’의 박쥐소년, ‘헤드윅’의 트렌스젠더 등 개성 있는 배역을 잇따라 맡았다. 2005년에는 ‘뱃보이’로 한국뮤지컬대상 신인상도 받았다.

그리고 지난해 “힘이 넘치는 햄릿에는 김수용이 딱”이라는 연출자의 추천에 따라 ‘햄릿’ 에 출연했다. 연출자의 안목대로 그의 힘있는 노래 실력은 가죽바지 입고 칼을 휘두르는 강렬한 햄릿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노래를 따로 배운 건 아니에요. 어려서부터 촬영 기다리는 시간에 이것저것 듣고 따라 하다 보니 도움이 된 거 같아요. 요즘엔 ‘김수용, 너 참 다행이다. 그런 거라도 있으니 밥 벌어먹고 살지’라고 생각해요. 안 그랬으면 어떻게 뮤지컬을 하겠어요.”

드라마 ‘간난이’의 한 장면. 영구 역을 맡은 김수용<左>과 간난이 역의 김수양. [중앙포토]

그는 인터뷰 내내 예의 바르고 겸손한 모습으로 ‘아역 배우 출신은 이렇겠지’하는 선입견을 뒤집었다. 오히려 아역부터 시작했기에 쌓인 25년 배우생활의 내공을 드러냈다.

“배우라면 드라마던, 연극이던, 다 할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다보면 ‘아역 배우 출신이 무대에 섰다’는 말 보다 ‘아차, 저 배우가 아역 출신이었지’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겠죠.”

글=홍주희,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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