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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미국 대선의 관전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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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그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식인과 미디어는 미국의 분열상을 보다 다양한 각도에서 논했다. 미국은 다양한 인종과 계층은 물론 가치관까지 수습할 수 없이 수많은 파편으로 해체돼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마저 모호해졌다. 미국은 국가의 이상이나 국민을 결속하는 구심점을 잃어버리고, 가지각색의 이해집단의 거래 속에서 방향감각을 잃고 떠밀려가는 공룡과 같은 존재로 추락했다. 그러다가 국가 정체성에 대한 해체적 인식은 2000년 대선을 기점으로 이분법적으로 더욱 간결하게 정리됐다. 정권교체의 찬스를 포착한 선거 전략가와 이에 편승한 지식인들이 국민들을 편 가르기로 밀어붙였다. 2004년에 이런 전략은 고착화됐다.

그러나 일각에서 이 같은 단순한 편 가르기에 대한 비판이 일어났다. 미국인들은 양당 정치의 세계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다. 퓨 리서치는 약 40%나 되는 미 국민 대다수가 독립적이라고 분석했다. 이들(‘자주색 사람들’)은 여러 다른 가치들을 서로 다른 패턴으로 섞어 가지며 선거 당일까지 누구를 찍을지 망설인다. 이들은 중도적이고 타인에게 관대하며 확실한 판단을 유보한다. 지식인이나 당원들만 과격한 견해를 명백히 갖고서 오히려 진실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비판자들은 종래의 문화적 균열과 불협화음도 근래에는 줄어드는 기세에 있다고 지적한다.

국민들은 그동안 분열적이고 해체적인 정치적 레토릭에 신물이 나 있었다. 그들은 미국이 더 이상 국가적 이상도 잃은 채 이익집단의 집합체로서만 표류하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는 공감대를 키웠다. 오바마는 바로 이런 미국의 시대정신을 읽었다. 그는 읽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표현하는 용기를 가졌고, 웅변술로 무장하며 대중에 다가갔다. 특히 젊은이들은 반하지 않을 수 없다.

종전에 비하면, 경선 선두 주자 세 사람(오바마, 힐러리, 매케인)의 정책적 대결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모두 다 중도적 스펙트럼 안에 포함된다. 시대적 변화를 감지한 덕분이다. 약간의 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단지 오바마는 ‘변화’와 ‘통합’의 메시지를 보다 거시적으로 드높이 투사했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미국이 이라크 전쟁, 북한과 이란의 핵 문제, 서브프라임 경제침체와 이민 문제에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방도를 제시하지 못한다. 이를 간파한 힐러리는 자기에게는 ‘해결책’이 있다고 손짓한다. 매케인은 보수적 공화당, 특히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불만을 사지만 이라크 전쟁을 소신껏 지지하면서 공화당 후보의 자리를 굳혀 간다.

오바마는 현재 개별 주의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를 앞서지만, 앞으로 펜실베이니아 경선이나 원로 민주당원으로 구성된 수퍼대의원의 지지를 확보할지는 불투명하다. 공화당은 부시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이 너무 크지만 혹시 민주당 경선이 파국으로 치닫지 않을까 은근히 기다리며 관망한다. 아무튼 누가 대선에 최종적으로 당선돼도 약간의 정책적 차이는 있을망정 모두 미국의 변화에 어느 정도 무게를 실어줄 것으로 예견된다.

김형인 한국외대 교수·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