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중국당국의 과민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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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국(中國)의 우리 동포 「조선족」들이 개최하려던 조선민족 문화축제가 중국 공안당국의 개입으로 좌절됐다는 소식이다.조선족동포 3만5천여명이 모이는 대규모 집회라 그 허가여부는 중국 당국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에 크게 시비걸 일은 아 닌 것같다.그러나 축전을 중단시킨 전후과정에서 우리는 중국 당국의 조처가 온당했는지 짚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현지에서의 소식은 중국 당국이 이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행사현장인 하얼빈에 도착한 한국 연예인들을 행사 직전 숙소에서 나가지 못하게 해 무산시킨 것으로 전하고 있다.『중앙의 지시에 따라 한국 연예인들은 중국내 조선족 군중을 상대 로 한 어떤 행사에도 출연을 허가할 수 없다』는게 그 이유였다 한다.
중국 동북(東北)지방의 3개 성에서 3만5천명이 모일 정도의집회라면 이미 오래전에 준비되고,중국 당국의 허가도 받아놓았던행사라 해도 좋을 것이다.또 한국 연예인들의 입국비자 발급과정에서 중국 당국은 여행목적을 충분히 알 수 있 었으리라 생각된다.그런데도 행사 직전에 금지하게 된 이유를 우리는 두가지로 유추해 볼 수 있다.하나는 북한을 의식해 중국의 동포들이 지나치게 친(親)한국적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막겠다는 발상이고,또 하나는 현지 조선족의 민족적 각성과 단결에 대한 우려다.그동안의 중국정부 태도로 미뤄 조선족 단결에 대한 우려가 이번 조치의 큰 원인으로 보인다.
이와 비슷한 일은 이번 뿐이 아니다.몇년전 국내 바둑기사들의현지 대국을 중단시킨 일도 있고,항일(抗日)독립정신의 노래를 기려 세운 「선구자」탑을 밤새 부숴버린 일도 있다.또 얼마전 우리 국무총리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의 리펑 (李鵬)총리도조선족의 민족의식을 자극하지 말도록 완곡하게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는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우리 눈에는 말로만 소수민족을 보호하고 모든 부문에서 동등한 권리를 인정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탄압하는 것으로 밖에 비쳐지지 않는다.대국(大國)을 자처하는 중국으로선 옹졸한 일이 아닐 수 없다.물 론 중국을 방문하는 우리 국민들도 중국측을 자극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는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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