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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즐겨읽기] 고운 우리말로 지은 시 57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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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고든박골 가는 길
이오덕 지음, 실천문학사, 215쪽, 9500원

이오덕(1925~2003) 선생이 살아계실 때 글 좀 쓴다는 문인은 다 그를 무서워했다. 우리 글과 말을 잘못 쓰는 사람은 실명으로 혼이 났기 때문이다. 글쓰기 교육과 어린이문학 바로세우기에 평생을 바친 그의 눈에는 우리 말글을 짓밟는 이가 가장 밉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가 남긴 유고 가운데 시 57편을 골라 엮은 이 시집에도 곳곳에 그런 마음이 담겨 있다.

'감자를 깎는다' '내 몸 같은 바지'라는 시 제목처럼, 그는 생활 속에서 겪은 일을 입말 그대로 담았다. "시원한 대답이 아니래도 좋으니/제발 그 어려운 말만 하지 마시고/쉬운 말씀으로 우리 온 백성들, /아니 저 불쌍한 토끼들, 참새들, 땅속에 들어가 있는/개구리들도 잘 알 수 있는 쉬운 말로 해 주십시오."

"햇볕처럼 따스한/우리 겨레말/파란 하늘처럼 고운/아리랑 나라의 말//산짐승처럼 쫓겨가고/개구리처럼 물고기처럼 죽어가는 그 말을 살려/우리 겨레를 살리려고" 애쓴 보람도 없었음일까.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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