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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제2부 불타는 땅 새들은 돌아오지 않았다(33) 농성 광부들을 진압하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고 했다.일본인들은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조선인들도 별다른 저항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흠씬 두들겨맞는 사이 다친 사람이 생겨나기는 했지만,죽어나간조선사람 시체가 선착장 위에 일곱이나 널부러져 있는 판인데,머리가 깨지고 다리가 부러져 나간 정도로는 재수 옴 붙었다 생각하면서 침 한번 뱉을 일밖에 거리도 되지 않는다 면서 정씨는 무슨 좋은 일이나 되는 것처럼 웃었다.그놈들은 병원에서도 치료를 하지 않기로 했다더라는 말을 하면서 정씨는 다리라도 부러져서 이렇게 들어와 있는 게 웬 복이냐는 얼굴이었다.
『조선사람 간 큰 줄 이번에 알았지 뭡니까? 앗따,난 생각만해도 다리가 후들후들하더구만….』 부러진 다리,후들후들 할 것도 없겠구만 그러네.명국은 입맛을 다시면서 정씨의 얼굴을 마주보았다.이 사람은 할일없이 눈만 크다니까.
『이번에는 일본사람들도 눈이 둥그래졌답니다.』 일본사람이야 그렇다치고 자네는 웬 눈이 그렇게 흰죽사발처럼 대추 하나 빠뜨린 듯이 허여멀겋기만 한가.같은 동포요 함께 고생하던 조선사람들의 일인데도 내내 남의 일처럼 흥이 나 있는 정씨를 못마땅해하면서 명국이 외면을 했다.
『아니,뭘 믿고 그런 엄청난 일을 벌렸을 꼬.고게 바로 쥐도고양이를 물 때가 있다는 고거 아니겠소?』 『아직 뭐 무서울 게 남아 있소,사토상은?』 둘이 앉아 있다가 느닷없이 자신을 사토라고 부르는 소리에 정씨가 큰 눈을 디룩거렸다.가타오카 의사가 때묻은 가운을 입고 게다를 끌며 다가왔다.그는 명국의 옆에 와 서며 말했다.
『사토상은 병실 안으로 들어가세요.둘이서 할 얘기가 좀 있으니까….』 정씨를 돌아가게 한 가타오카가 명국이 앉은 의자 옆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뼈가 꼭 필요하십니까? 지금 모두들 긴장하고 있는데 나중에라도 혹시 무슨 일이 날지 몰라서,그래서 묻는 겁니다.』 오늘화순의 시신이 화장터가 있는 섬으로 옮겨진다는 것이었다.섬안에서 이루어지는 화장에 가타오카는 의사로서 간여하게 되어 있었다.그것을 알고 있던 명국은 화순의 뼈를 전해받고 싶다는 부탁을그에게 해 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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